13. 발걸음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by 새벽뜰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中>


101번 버스를 자주 탔던 건 목적지까지 가장 편안하게 나를 데려다주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탔는데 이게 무슨 일, 그렇게 많은 자리가 있음에도 승객은 너와 나 단 둘 뿐이었다. 커다란 쇼핑백에 담긴 건 대여섯 권 정도 되는 책이었는데 나는 내릴 상황을 고려치 않고 습관적으로 가장 뒷자리로 가 앉았던 것이다. 덜컹 거리는 버스가 불안해서 부리나케 걸어가 잡은 버스 기둥이었고 바로 앞엔 네가 앉아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너여서 나는 좀 안심했다. 생전 모르는 사람이 자기 앞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리 안심을 주지는 못했을 테니까. 나 역시 너를 바로 볼 수는 없었다. 처음 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

습관적 뒷자리를 좋아한 나는 내리는 문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날따라 무겁던 책들이 행동 폭을 좁혔다. 난 사실 이상하게 네가 신경 쓰였다.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난 사실 놀랐다. 같은 곳에 내린 건 그렇다 쳐도 눈에 띄게 내가 먼저 내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던 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거리엔 너와 나뿐이었는데 우리는 서로 약속한 듯 보폭을 맞춰 걷고 있었다. 너의 하얀 운동화가 자꾸 내 시야에 들어왔을 땐 용기 내어 너의 옆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알다시피 나는 확실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되감아 보니, 너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부터 남 같지 않은 남이었구나. 서로의 세계 속에 새겨진 인연이긴 했던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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