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열 마리는 죽어도

그 중 하나는 죽지 않는다

by 루담


까마귀 열 마리는 죽어도 그 중 하나는 죽지 않는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속담 하나가 있다. "까마귀 열 마리는 죽어도 그 중 하나는 죽지 않는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까마귀의 영리함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아무리 많은 까마귀가 죽어도 한 마리는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까마귀의 생존 본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집단의 연대와 지혜, 그리고 생명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다.

까마귀는 무리를 이루어 산다. 한 마리가 위험을 감지하면 곧바로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들의 까악거리는 소리는 단순한 잡음이 아니라 정교한 의사소통 체계다. 먹이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천적의 접근을 경고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런 집단 지성 덕분에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누군가는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지만, 인류는 결코 멸망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도, 전염병이 돌아도, 자연재해가 덮쳐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문명을 이어갔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지식을 전수하며 연대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었다.

가족도 그렇다. 부모님 세대가 겪은 어려움을 보며 자식들은 더 나은 길을 찾는다. 형제자매 중 누군가는 실패해도 다른 누군가는 성공하여 가문을 일으켜 세운다. 한 사람의 희생이 다른 사람들의 기회가 되고, 한 사람의 지혜가 여러 사람의 교훈이 된다.

작은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기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도 한두 곳은 끝까지 버텨내며 동네의 명맥을 유지한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포기해도 몇몇은 끝까지 노력하여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회사에서 많은 직원이 떠나도 남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다.

까마귀 한 마리의 생존은 개체의 영리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리 전체의 경험과 지혜,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만들어낸 결과다. 살아남는 그 한 마리는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희생과 경고, 가르침 위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결국 "까마귀 열 마리는 죽어도 그 중 하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은 희망의 메시지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반드시 살아남는 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생존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혜와 연대의 힘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도 어디선가 까마귀들이 까악거리며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소리 속에는 생명을 향한 의지와 동료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우리도 그런 까마귀들처럼,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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