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징옥
기록만을 믿기 어려운 이유
역사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역사는 의미를 바꾼다.
이징옥은 단종의 충신이었다.
함길도 도절제사로서 북방의 군권을 장악한 그는,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의 부상에 정면으로 맞선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수양대군에 의해 김종서가 제거된 뒤, 그의 오른팔이었던 이징옥에게 선택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저항을 선택했다기보다 떠밀려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아는 이징옥은 더 이상 충신이 아니다.
그는 ‘대금국을 세우고 황제를 칭한 야망가’,
조선을 배신하고 오랑캐와 결탁한 위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얼굴은 그의 실체일까.
아니면 세조 정권이 필요로 했던 얼굴일까.
세조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반란 그 자체가 아니었다.
진짜 위험은 명분이 살아 있는 저항이었다.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 등 고명대신은 제거되었지만, 단종은 여전히 왕위에 있었다. 의리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징옥의 봉기는 그 의리에 무력을 부여할 수 있는 불씨였다.
그래서 세조 정권은 이징옥을 단순한 반역자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를 체제 밖의 존재로 밀어내야 했다.
김종서의 그늘에 가려졌을 뿐, 이징옥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여진족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백성과 부하들에게는 어진 지휘관이었다.
늙은 부모에게는 효성 지극한 아들이었으며,
무례한 명 사신에게는 단호한 응징으로 조선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부정축재로 구설에 올랐던 형 이징석과 대비되어, 이징옥은 오히려 청렴의 상징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바뀐다.
충신은 야망가가 되었고,
의리는 사욕으로 바뀌었으며,
저항은 반역으로 재명명되었다.
‘대금국 황제’라는 표현은 이 변환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언어였다.
그 순간 이징옥은 단종의 충신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해 조선의 권위를 부정하고
오랑캐에 투항한 반역자가 되었다.
그가 실제로 황제를 칭했는지는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누구의 기록으로, 어떤 필요 속에서 남았는가다.
패배자는 해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승자는 해석할 권력을 가졌다.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는 힘
여기서 오십의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세상은 옳고 그름보다, 조직과 구조에 더 충성한다는 사실을.
이징옥은 명분을 지켰다.
그러나 그는 조직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 세조는 명분을 훼손했지만, 체제를 재편하고 구조를 장악했다.
오십 이후의 우리는 이 갈림길을 늦게나마 체감한다.
회사의 가치, 조직의 이상, 공동체의 명분이
어느 순간부터 말이 아니라
보고 체계와 인사권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그때 우리는 선택 앞에 선다.
이징옥처럼 명분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세조처럼 조직을 장악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하게 말한다.
둘을 동시에 갖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징옥은 실패했기에 설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대신 세조 정권이 그를 설명했고,
그 설명은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오십에 이르면 우리는 안다.
조직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까지 붙들었던 이유라는 것을.
그래서 이징옥의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회의실에서, 인사 발표에서,
“현실을 모른다”는 말 뒤로 밀려난 얼굴로.
단종의 충신이
반역의 창업자가 되었듯,
명분은 늘 패배자의 언어가 되고
조직은 승자의 역사로 남는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십은 더 이상 늦은 나이가 아니다.
비로소 질문할 수 있는 나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사육신을 비롯해 세조의 집권과정 중 희생된 자들에 대한 재평가와 명예 회복은 재야의 사림뿐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 조정 내부에서도 조심스럽게 논의되었다.
중종 대에는 그 기미가 나타났고,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관 주도로 신원 회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징옥은 예외였다. 정조 대에 잠시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신하들의 문제 제기로 다시 추탈되었다.
‘대금국 황제’라는 굴레가 그렇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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