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귀여운 얼굴 때문에 다 참고 삽니다만...
흔히들 그렇게 말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숭고한 사랑이라고. 나도 그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숭고한 사랑이 아니라면 부모들의 그 많은 희생이 어디서부터 오겠는가. 하지만 왜 유독 '나의 자식 사랑'은 그다지 숭고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나의 외모를 기준으로 하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전설처럼 들려오는 잘생긴 애인과의 연애 경험담을 친구들로부터 들어보면, 이런 연애에서는 말다툼 끝에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다가도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보면 스르르 화가 풀려버린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내가 가진 아기에 대한 애정이, 얼굴만 엄청 잘생기고 나머지는 하나도 볼 것 없는 애인에 대한 사랑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아기는 외모가 너무너무 귀엽다. 정말 말도 못 하게 귀엽다. 눈이며 입이며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 이 작은 몸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엄청 귀여운 미니사이즈로 다 붙어있다. 게다가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무결점의 피부에 찹쌀떡 같이 쫀쫀하고 탱탱한 볼살이라니! 아기에게 뽀뽀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각질하나 없는 보드라운 입술이 볼에 스칠 때의 황홀경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게다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아기와 눈만 마주쳐도 미소를 짓는다. 어쩌다 아기가 먼저 손인사라도 할 때면 사람들의 무표정은 즉시 무장해제되며 세상 가장 따뜻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그럴 때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여기 좀 보세요!!! 이 귀여운 아기가 바로 제 아기입니다! 제가 바로 이 아기를 낳은 생모라고요!!!"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아본다. 마음 한편에 피어오르는 자랑스러움. 아마도 모델 같은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고 걷는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외모를 가진 애인(아기)은 사실 엄청난 무능력자이다. 얼마나 무능하냐면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하고 옷도 입지 못하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인 것이다. 즉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 혼자서 잠도 들지 못한다! 인간이 혼자서 잠을 들 수 없다니... 신생아 시절 내가 알게 된 가장 충격적인 사실 중의 하나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재우기 위해 둥기 둥기를 하던 무수한 새벽마다 인간이 자기 혼자서 눈을 감고 이불을 덮으며 자게 되기까지 과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를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거기다 성격조차 그다지 좋지 못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일단 목놓아 울고 본다. 거기다가 장난감을 얼굴에(정확히 내 얼굴에 조준해서!) 던지거나 바닥에 누워 구르며 떼쓰는 것은 옵션이다. 성인이라면 진작에 분노조절장애 상담을 받았어야 할 만한 모든 행동들을 아기들은 매일매일의 일상으로 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말조차 통하지 않는다! 두 돌이 되어가는 요즘에는 아기가 말로 자기 의사표현을 꽤 할 수 있게 되어 사람과 살고 있다는 기분이 조금씩 들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아이와의 의사소통은 사실상 눈치게임에 가까웠다. 태어난 뒤에도 꽤 오랜 시간 아기는 불편함, 슬픔, 짜증, 아픔, 심심함 등의 복잡한 감정을 모두 울음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이것을 맞추는 것이 나에게는 늘 어려운 과제였다.
쓰다 보니 다시 정정해야겠다. 나의 아기에 대한 사랑은 마치 '얼굴만 잘생기고 무능하며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외국인 애인'에 대한 열렬한 짝사랑 같았다고... 이 정도면 예쁘장한 얼굴에 홀려 다른 심각한 단점들을 모두 참아내는, 숭고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형태의 사랑이 아닌가?!
농담처럼 썼지만 다 진담이다(?). 아기가 두 돌을 지나고 있는 요즈음, 점점 아기와 나의 인간으로서의 교감과 사랑의 감정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이는 커가며 나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또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겠지. 아마 내가 진정으로 숭고하다고 느낄 순간들은 지금부터일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아이가 기억 못 하는 이 순간들에 내가 아기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 자체만으로 이미 숭고하다고 할 수도 있으려나.
신은 정말 대단하다. 이토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라는 존재들에게, 지구를 다 부셔버리고 싶게 만드는 귀여운 외모를 내려서 어른들을 조종해 그들을 키우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아기 동물들이 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이건 신의 음모가 확실하다.
가끔 우리 아기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내가 이렇게 귀여운데 감히 니가 날 안 키워?
어서 잘 키워. 키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