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전쟁 같은 이유식
육아에 있어서 가장 힘든 부분을 꼽으라 한다면, 사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힘들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찍기가 어려울 정도긴 하다. 새벽에 자주 잠을 깨는 아기 때문에 늘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고통, 밑도 끝도 없이 보채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화가 나는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자괴감, 하루 종일 늘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지만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괴리감 등등...
그런데 육아의 어려운 요소 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을 꼽으라면 나에게는 그건 바로 '요리'였다. 한 번도 요리에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고 요리를 하는 기쁨도 느껴본 적이 없던 나에게 요리란 늘 아주 먼~~~~ 훗날 언젠가 잘하게 될 것만 같은 그런 것이었다.
사실 결혼 후에도 특별히 요리를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요리에 대해서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늘 적당히 사 먹고 적당히 해 먹었다. 맞벌이였기에 사실상 평일에는 같이 밥을 먹을 일이 없었고, 주말은 외출을 해서 사 먹는 패턴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호시절(?)은 아기의 탄생과 함께 물 건너가게 되었다. 아기는 요즘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하루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먹는다는 삼식이인 것이었다! 사실 초반에 모유/분유만을 먹는 시절....(하... 그때를 생각하니 또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때는 위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1시간 반/2시간마다 먹어야 한다. 무조건! 그러니까 아기는 잠자다가도 2시간마다 깨어서 뭔가를 먹어야 하는, 십이식이었던 시절도 있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기로 하고...
어쨌든 그 삼식이는 자기 혼자 밥상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데다가, 숟가락을 쥐어 자기 입에 넣는 간단한 행위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소화 능력 또한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별로 먹을 수 있는 입자의 크기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또 시기별로 신생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특정한 음식들을 제외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너무 안 먹이거나 늦게 먹이면 또 이후에 그 음식에 알레르기가 생긴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모든 음식들을 조금씩, 적당한 입자로 갈거나 채 써서, 또 영양소의 균형을 갖추어서 먹여야 하는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아기가 슬슬 이유식을 시작해야 하는 4-6개월 사이 어느 때쯤이었다. 군대 동기만큼이나 빡센 우정을 자랑한다는 조리원 동기들과 그날도 단체 채팅창에서 카톡을 하고 있었다. 사실 늘 카톡을 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정보에 뒤쳐지는 편이었고, 50일이나 100일 준비도 늘 허덕이며 하는(사실 귀찮아서 안 하고 싶어 하는) 편이었다. 이런 나의 게으름에 대해 다른 동기들도 슬슬 눈치를 채가는 것 같던 그때쯤 대화의 주요 주제는 바로 이유식 메뉴였다.
다른 엄마들은 이미 둘째를 낳은 엄마들도 여러분 계셨고 또 나를 제외한 엄마들이 다들 어찌나 부지런했던지, 내가 언뜻 들어봐도 늘 육아와 살림을 완벽에 가깝게 잘 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벌써 이유식 책도 준비했고, 첫 이유식인 다양한 재료를 넣은 미음을 만들기 위한 마스터 쿠커나 다지기, 스페츌라와 이유식 용기 등 이유식을 만들 도구도 갖추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나도 내 아이의 첫 이유식은 직접 만들어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비루한 요리실력과 요리실력보다 더 좋지 않은 체력으로 준비기-초기-중기-후기-완료기로 빈틈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을 언제까지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와 관련된 모든 용품이 그러하듯 이유식 도구들은 꽤나 가격이 비싸다. 내 좋지 않은 체력보다 경제력은 훨씬 더 좋지 않았으므로 그 다양하고 아름다운 도구들을 사서 한두 번 쓴 다음에 좁은 집에 장식품으로 두게 될 것 또한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채팅창에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냥 이유식 시작부터 배달 이유식으로 먹이면 어떨까요....?"
"어머, OO엄마 큰일 나요. 그럼 애기 입맛 다 버려요. 우리 첫째는 6살인 지금까지 피자나 햄도 먹어본 적 없어요. 제가 다 직접 해 먹였거든요. 그래서 가리는 음식도 없고 매생이 굴국도 한 그릇 뚝딱 해치워요. "
애기 입맛을 다 버린다니....!! 근데 사실 제 입맛은 이미 버릴 대로 버려진걸요.... 요리 못하고 외식 좋아하는 이 엄마 밑에서 큰 아기가 제철음식과 산해진미의 풍미를 아는 아이로 자란다면... 전 그 아이를 더 이상 키우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 아무래도 그렇겠죠?ㅎㅎㅎ일단 시작해 봐야겠어요!"라고 발랄한 척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결국 난 처음 몇 번의 쌀미음과 완두콩 미음, 소고기 미음 등을 엉망진창으로 해 먹인 뒤에, 배달 이유식으로 꾸준히 아기를 먹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이 맛저 맛 가리지 않고 잘 먹어주었다.
매일 이유식 메뉴를 함께 고민하던 엄마들 사이에서 배달 이유식을 먹이는 나는 할 말이 없었기에 점점 말수가 줄어갔고, 아기가 진죽을 먹을 때쯤에는 자연스럽게 그 대화방에서 더 이상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꼭 이유식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육아관이나 삶의 모습이 많이 달랐던 이유가 컸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한 동생은,
"입맛을 버린다니 무슨 뜻이지? 아~~ 배달 이유식이 너무 맛있어서 앞으로 언니가 만든 음식은 아기가 절대 안 먹게 된다는 뜻이구나! 그렇지?"
라고 되 물었고, 내 살림 실력은 뻔히 아는 대학 동기는
"야, 넌 앞으로도 꼭 이유식 배달시켜 먹어라. 배달 이유식 업체들 사업장이 너희 집 부엌보다 훨~~~~ 씬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어. 알았냐?"
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우리 아기는 결국 짜장면의 춘장 맛과 돈가스의 바삭함을 알아버린, 예견된 대로 아주 버려진 입맛의 소유자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물과 멸치볶음이고 소고기와 깻잎쌈을 좋아하는, 특별히 편식하지 않는 아기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반찬집에서 많은 반찬을 사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한 요리를 먹이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
사실은 부지런한 엄마들이 늘 부럽다. 요리 한번 하려면 싱크대와 식탁은 물론 거실 바닥까지 어질러야 하고, 테이블 세팅은커녕 반찬통에서 반찬을 그릇에 덜어먹는 것도 너무 귀찮은 나에게는 영원히 닿지 못할 어떤 이상향 같은 엄마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부지런함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를 위한 세심한 정성임을 안다.
또한 지금 이순간에도 부족한 잠으로 몽롱한 정신을 붙들고 발 밑에서 울며 메달리는 아기를 달래가며 전쟁처럼 아기를 위한 밥을 만들고 있을 모든 엄마들을 모두 존경한다.
하지만 나같은 엄마도 괜찮다는 말 또한 듣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이 이것이라면, 여전히 아기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면. 그래서 이 글이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도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나도 요리 잘하는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