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줘

아이돌에 빠져 빵점 육아에 자책하는 나에게

by 김중간

아무래도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 건지 까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이어서 뜬금없는 이야기로 찰떡같은 플롯을 짜는 게 특기라면 특기였는데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하는 지도 잊은듯한 날.

책꽂이엔 수집벽이 있는 사람의 것처럼 책이 가득 있었다. 처음 고를 때 펼쳐보았던 것이 전부인 책들이 이제 제발 나를 읽어주든가, 아님 팔든가, 도대체 이럴 거면 애초에 날 왜 사 왔냐고 항변하는 듯했다. 그런 책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나는 짧은 단편 하나를 읽는 호흡이 부족해서 허덕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이었으므로 차량에 태워 등원시키고 나면 다소 여유로운 시간이 허락됐다. 단단히 각오하고 책을 골라 카페에 가서도 하릴없이 핸드폰 액정만 쳐다보다가 통화목록을 뒤적이기 일쑤였다. 책은 카페 공기 한 번을 못 맡고 그대로 집에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것은 프로듀스 101을 9편쯤 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보다 열몇 살은 어린 연습생들을 보면서 광대가 아프게 웃고 있었다니, 예쁜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친구의 일갈도 전혀 납득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내 아이에게 '토킹 톰'이나 '핑크퐁 마더구스 잉글리시'같은 앱을 켠 핸드폰을 건네고 그 연습생들이 나온 영상을 게걸스럽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가 잠들기 전에 '엄마 내일은 나랑 인형놀이해줄 거지?' 하기 전부터 내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육아 스트레스, 기약 없이 기다리던 남편의 합격소식,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무거운 현실감.
그런 것들이 나를 너무 몰아쳐서 그렇다고 위안 삼기에도 TV에 빠진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이 나이 먹고 주책이지?


민망함을 숨기는 걸 포기하고 먼저 입을 열었더니 남편에게서 돌아온 조언은, 뭔가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이었다. 아마도 운동, 아니면 헬스, 아니면 체중감량, 또는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테지. 그 무렵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시간을 살기로 하면서 부쩍 '나'에 대한 모든 소망을 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그 결과는 건강악화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체중, 생리불순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남편이 나를 생각해서 했던 말도 맞지만,


나는 그만 뾰족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나는 조금도 생산적이고 싶지 않은데?
전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로 그냥 내 감정의 즐거움을 위해서 사치스럽게 내 시간을 쓰고 싶은데?

왜 나는 나를 위해 감정을 낭비하는 것마저 사치가 되어야 하는 거야?

왜 꼭 모든 일에 소망과 목표를 담아 결과를 향해 달려야 해?

그냥, 그냥 하고 싶은 일도 있는 거잖아?


남편의 말에 두 마디 세 마디 덧붙인 반박 문구를 차마 뱉지 못하고 속으로 여러 번 곱씹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스산한 바람 끝에 예고 없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는데도 유독 흑백처럼 어둡게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해가 쨍하니 비추던 대낮의 기억인데도 기억 속에선 유난히 어두운 짧았던 미국에서의 추억이 그랬고, 아이의 방학 때 손 붙잡고 들어갔던 상업 지구의 어느 동전 노래방에 대한 기억이 그랬다.


동전 노래방이 뭔지도 잘 모르는 아이가 나는 ㅇㅇ이가 부러워,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주말 동안 뭐하고 지냈냐고 묻자, 한 친구가 가족들과 동전 노래방에서 놀고 왔다 자랑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팝콘도 먹고요 뽀로로 음료수도 마시고요, 엄마랑 아빠랑 저랑 형아랑 노래 부르고 춤췄어요. 막 뛰어도 되가지고 춤도 췄어요. 우스꽝스러운 춤도 보여줬다고 아이가 흉내를 냈다.


엄마 나도 동전 노래방 가보고 싶어. 동전 노래방.


공부하는 남편에겐 이야기해봐야 속만 상할 이 이야기를 혼자 가슴에 품고 아이 손을 잡고 동전 노래방에 갔다. 어린 학생들과 풋풋한 청춘들 사이에서 어린이 손을 붙잡고 애매하게 서있는 동안 그만 돌아갈까, 잠깐은 고민했던 것 같다. 작은 방에 들어가 번쩍이는 불빛과 과하게 신난 엄마를 번갈아보는 아이에게 짐짓 더 과장된 웃음을 보이면서 뽀로로며 곰 세 마리며 하는 것들을 목이 터지게 불렀다. 너도 해봐, 너도. 애꿎은 마이크만 손으로 톡톡 치는 아이에게, 에이 바보, 놀리면서 나는 기어코 포지션의 I LOVE YOU까지 불렀다. 아이가 수상한 사람을 보듯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곡으로 타요타요 타요타요 개구쟁이 꼬마버스, 열창하고 나와 담배냄새 찌든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건물을 벗어나니 물씬 폐포로 스미던 시원하면서도 서늘했던 공기가 기억난다.


방학 때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옥토넛 뮤지컬을 보러 갔었다.
왕십리였다.
지하철을 타고 또 갈아타고 중간에 화장실도 가고 새콤달콤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 물티슈로 닦이고 내리는 비에 우산도 몇 번 폈다 접었다가, 공연 관람 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한껏 비위를 맞추면서.

그렇게 도착한 공연장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결혼 전에 서울에 살긴 했지만 내가 살던 곳과 왕십리는 같은 2호선 라인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접점이 없었고, 학교와도 멀었기 때문에 내 기억에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 시내엔 아주 비슷해 보이는 곳들이 많으니까 그런 착각 중 하나겠거니.


공연은 재미있었다. 부지런하지 못해서 명당자리를 놓쳤기에 출연진과 악수를 하지 못했지만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면서 옥토넛!!! 바나클 대장!!! 콰지!!! 페이소!!! 외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신이 나 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옥토넛 대원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전쟁 피난길 같은 인파들을 해 집고 나도 아이 손을 잡고 줄을 섰다. 혹시 새치기하는 인파에 아이가 다칠까 봐 부쩍 긴장해선 아이의 작은 손을 단단히 붙들고 내 팔로 주위를 경계했다.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하는 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아! 낯설지 않았던 공연장의 비밀을 깨달았다.


옥토넛 대원증을 나눠주는 이 자리가 대학시절 참가했던 백일장 원고지를 나눠주던 곳이라는 것을 공연장의 이름에 담긴 강력한 스포일러에도 뒤늦게 눈치챈 것이다.


소월아트홀



마지막까지 운문과 산문 사이 뭘 쓸지 고민하면서 줄에 서있던 내가

옥토넛 배지와 옥토 해치 장난감과 콰지 피규어 중 뭘 살지 고민하는 딸과 잠깐 겹쳤다.

회한에 잠기기도 전에 사방에서 밀려오는 아이들의 소음이 귀를 마비시켰다.

그냥 그뿐이었다.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신작들의 소식을 담은 메일을 읽었다. 함께 글을 배우던 어떤 이가 등단을 했다는 소식은 일전에 들어 알고 있었는데 메일에는 그의 신작 소식도 있었다. 사람들이 남긴 찬사에 가까운 리뷰들도 읽었다. 부러웠다. 나도 그 선배만큼 썼던 것 같은데. 속절없는 질투가 났다.


동전 노래방의 공기, 소월아트홀의 옥토넛, 이메일 속 유명 작가가 된 지인의 신작 소식까지.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쳤던 기억의 파편들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쳤다.

아이돌을 보면서 검색창에 그 애들의 이름을 넣고
그 애들의 사진을 보고
그 애들의 프로필을 보다가 나이 부분에서 또 뜨악하고.

그러다가 문득 나는 그냥 나로서 내 감정을 날것으로 분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를 변호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엄마고, 아내인데. 나는 살림을 해야 하는 가정이 있고 또 나는 나이도 먹었고,

내가 이걸 보는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또…

이런저런 산통 깨는 생각들로 괴로우면서도 그래도 또 젊은 애들 보면 좋고.
좋은데 싫고. 싫어도 멈출 수 없고.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제어할 수 없던 감정을 제어하기 싫은 이상한 날을 보내며 당황하던 나에게,

그래, 뭐 쓸데없는 짓 좀 하면 어때.
쓸데없는 짓 하면서 나한테 쓸 시간도 필요하지.
당연히 그래도 돼.

좀 쓸데없이 사는 것 같아도 괜찮아.

지나 보니 쓸데없이 살았던 시간이 다 쓸데가 있더라.

그러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아.

다 괜찮아.


과거 일기장 속 자책하는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대로 나이고, 옥토넛은 그대로 옥토넛이고,

그렇게 밤새워 보던 아이돌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게 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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