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지역, 참 좋은 지역

마트 앞 견인지역에 대한 고찰

by 김중간

집 앞 마트에 정월대보름에 먹을 나물 재료들과 잡곡을 사러 갔다. 내가 뭐 그렇게 절기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은 아닌데 굳이 넘어가지 못하고 마트를 간 것은 내일모레가 정월대보름이네, 했더니 보름이가 뭐냐고 묻는 딸 덕분이다.


코로나로 특별히 집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계절감이 떨어진다. 패딩을 입었다가 카디건으로 고쳐 입었다가 다시 롱 패딩을 걸쳐 입고 현관까지 나갔다가 다시 마스크를 챙겨 나오는 과정에서 지갑을 놓고 나왔던 모양이다.


계산대 앞에 서서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어머'를 다섯 번쯤 하니 애잔하게 나를 보던 계산원이 영수증 하단에 적힌 계좌번호에 사은품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 건넸다.


- 이만 칠천구백 원, 보내시고 이체 화면 보여주세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진심을 담아, 나의 진심이 개마고원까지 닿을 수 있도록 최대한 안면근육을 활용하며, 어머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어머, 를 외치면서 신속하게 이체를 하고 화면을 보여드렸다.


20리터 봉투에 장본 것을 담고 민망한 마음을 재빨리 갈무리해 서둘러 나오는데, 아이가 마트 입구에 있는 '견인지역' 팻말을 소리 내서 읽었다. 호기심은 좋은 것이다, 사방에 배울 거리가 있다, 묻는 만큼 배운다, 깊은 생각이야말로 올바른 삶의 지름길이다,라고 설파한 외할아버지 덕분에 아이는 보이는 대로 묻고 생각한다. 이번 주제는 '경범죄에 대한 토론'이 될 것인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아이가 골똘히 생각하는 톤으로 말한다.


- 견인지역...


그러더니 조금 뜸을 들이고 다시 덧붙인다.


- 참, 좋은 지역...


외할아버지가 주문하고 그녀가 실천하는 깊은 생각이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았다. 왜 견인지역이 좋은 지역이냐고 묻자 충격받은 표정으로 입을 허 벌리고 말한다. 개와 사람의 구역이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한 방향이다. 거기에 더해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이 압권이다.


- 아니, 장 보러 갈 때 엄마는 마트 안에 라키 데려갈 거야? 음식이 있는데?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데려갈 수 있어? 아니잖아. 그럼 어떡할 거야? 견인지역에 두고 가야지. 개와 사람의 구역. 여기다가 묶어놓고 가라고 이렇게 세워둔 거잖아. 그래서 써 논 거지. 몰랐어?


응,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모르겠다.


견인구역의 진실을 너에게 바로 알려줘야 할까?

개 견과 사람 인을 알고 있으니 기뻐할 일일까?

다 아는데 뻔뻔스럽게 농담을 하는 건 아닐까? (요새 들어 뻔뻔 스킬이 날로 늘어난다. 아마도 장난꾸러기 엄마 덕이겠지. 다 내 업보다)


몰랐다.

지금도 모르겠다.

알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부럼을 깨문다.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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