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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n 22. 2023

나의 일그러진 파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 2023 창비 계간지 여름호 박정민 논평 <일그러진 나의 어떤 것>

    배우 박정민이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대해 쓴 촌평을 읽었다. 많은 촌평 중 이 글을 가장 먼저 골라 읽은 이유는 박정민 배우가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박정민을 좋아한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영화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변산>, <시동>, <사냥의 시간>, <기적>, <헤어질 결심>, 드라마 <지옥>을 봤고, 꽤 오래전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잠시 출연한 모습을 봤을 때 확실히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느꼈다.

     배우로서의 매력은 둘째 치고, 예능 <나 혼자 산다> 속의 박정민 배우의 일상에서 이 사람이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의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찾아보니 2019년 12월에 방영된 편인데, 내가 ‘박정민’이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그때 내가 보았던 그의 모습과 느낌이 바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에게는 꽤 인상 깊은 장면들이었던 것 같다. 한겨울 출장차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하여 집에 돌아가는 길에 탄 차가 검은색 스파크였던 것도, 한 건물에 세 들어 사는데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집 안에서 두터운 옷을 입고 있던 것도, 친한 친구인 故박지선을 집으로 초대해 서로가 좋아하는 펭수 캐릭터 스티커와 캐릭터 상품을 나누며 좋아하는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또 이 모든 일련의 일상에서 거짓된 표정과 웃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연예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렇겠다 라는 평가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상당히 무던하고 담백한 말투와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에 대한 이러한 나의 평가를 떠올리며 논평을 읽었다.

     박정민은 논평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줄거리를 ‘아주 못생긴 여자와 나름 준수한 것으로 짐작되는 남자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라는 한 문장으로 줄이고, 찌그러진 무언가를 지니고 사는 모두를 품는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삶에서 버려지거나 그립거나 애달프거나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속 계곡이 무언가로 인해 넘쳐흐를 때 이 책을 다시 꺼내 찾아 읽는다고 적었다. 이쯤 읽으니 나는 이 책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인식하는 ‘나’와 타인이 인식하는 ‘나’는 너무나도 다르다. ‘나’에 대해서는 ‘나’만이 안다. 내가 어떤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꽤 긍정적인 단어들로 ‘나’를 평가해 주지만 ‘나’는 이미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있는 사람이고 이런 나에 대해 연민하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바뀌어보려고 시도한다. 이 짧은 논평을 읽으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찌그러진 면들, 나를 그렇게 찌그러트렸던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그들의 찌그러진 모습을 통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학교 도서관에 들러 사서 선생님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냐고 묻고 책을 빌려왔다. 아직 4분의 1밖에 읽지 못해 그 모양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꽤나 기대감을 갖고 글을 읽고 있다. 400페이지의 책의 100페이지 언저리에서 20살이 채 되지 않은 두 남녀가 자신의 어떤 일그러진 파편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내가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던 순간이 외모가 아니었던 지난 어린 날들이 떠오르며 소설 속 ‘아주 못생긴 여자’의 어떤 면이 ‘나름 준수한 것으로 짐작되는 남자’의 마음을 흔들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읽어내었을 때의 나는 나의 어떤 일그러진 파편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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