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학교에서 아이들로 인해 분노가 치밀었다.
올해는 교사로서 일하는 7년 차의 해이자, 담임으로서는 여섯 번째의 해이다. 담임교사가 해야 하는 업무는 수없이 많지만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업무는 생활지도이다. 정해진 시간에 교실에 도착하고, 규정에 맞게 복장을 갖추고, 조회 시간에 휴대폰을 제출해야 하는 등 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칙들을 내 눈을 피해(사실 그들은 피하지 못했지만) 지키지 않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 내가 생활지도를 이토록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 행위의 결과가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적이 없어 에너지가 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내년이면 쟤네도 스물인데, 내가 말 몇 마디 한다고 19년 동안 쌓아온 생활 태도가 달라질까? 하는 회의적인 마음도 한편에 있고. 아무튼 그래서인가 내가 아이들을 아주 배려해서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아이들은 그렇게 여겨주는 것 같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아서 잘 규칙을 지켜준다. 그래서 아이들과 꽤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런 내가 잔소리를 하는 순간은 마음속에서 5번 정도 참다가, 저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을 때이다.
우리 학교 분리수거 일은 월, 수, 금이다. 분리수거는 학년 초 분리수거 담당자를 희망한 학생 두 명이 한다. 이 학생들은 분리수거 봉사를 함으로써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봉사 시간을 받고, 성실하다고 여겨지면 담임교사가 '성실하다'는 뉘앙스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기재해 준다는 이득을 얻는다. 우리 반에도 분리수거 담당자가 있고, 둘 모두 학기 초 자원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반은 분리수거가 그렇게 잘 되고 있지 않다. 관찰한 바로 분리수거 담당자는 일주일에 많으면 1회 정도 분리수거를 한다. 분리수거 타이밍은 교실 내 분리수거함이 쓰레기를 뱉어낼 때이다. 플라스틱, 종이, 캔 및 병, 일반쓰레기통이 많은 양의 쓰레기가 쌓여 쓰레기를 뱉어내고, 바닥에 쓰레기가 나뒹굴 때쯤 분리수거를 한다. 여느 때와 같은 금요일 종례시간이었고, 사설 모의고사로 학생과 교사가 모두 지쳐있었다. 나는 "오늘은 모두 시험 치르느라 고생했고 교실도 깨끗하니, 각자 쓰레기 하나씩만 줍고 분리수거 담당자들이 분리수거만 꼭 하고 집에 가기로 해요."라며 종례를 했다. 종례 후 아이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 학생이 무언가 부탁을 해 잠시 교무실에 갔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사설 모의고사 채점을 하는 몇몇 아이들과,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통이 보였다. 분리수거 담당 학생이 아직 있기에 "오늘 꼭 분리수거하고 가세요."라고 당부하였다. 아이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였으나, 두 번 이야기했으니 듣겠지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시 교실로 돌아오니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은 켜져 있었고,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통이 가만히 보였다. 그 순간, 분노가 발 끝에서 치밀었다.
그 짧은 찰나에 수많은 언어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지금 전화를 해서 당장 오라고 화를 내야 할까? 다음 주 월요일에 하라고 좋게 말해야 할까? 아, 스트레스받는다. 화난다. 결국 나는 일반쓰레기봉투, 플라스틱 쓰레기통, 캔 및 병 쓰레기통을 양손에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내려갔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벌은 '부채감'이라고 생각하며.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오늘 분리수거는 내가 했고 다음부터 하지 않으면 내가 하겠다고, 본인이 맡겠다고 한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행동이 잘못된 일인 것 정도는 열아홉이면 깨달을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죄송하다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답장이 왔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내 일을 꽤나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아이들에 대한 친절한 태도라는 호의의 결과가 무시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태로 다가오니 허탈해졌다. 그런 형태의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에게 지도라는 명목으로 내 에너지를 써야 옳은 건지, 평소의 내가 타인에게 그래왔듯 그저 관계를 놓아버리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는 상념에 사로잡혀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출근길, 오랜만에 학교에 가기 싫었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대면하는 것이 불편해서였다. 지독한 회피형 인간인 내가 일상생활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을 안 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의 생각의 끝에는 나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지금도 떠올리면 부끄러운 순간이 매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전교 학생회 임원이었던 고2의 나는, 적당히 학교 생활을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는 성실히 했지만 노는 것도 좋아해서 학생회 임원 친구들과 학교 행사를 벌이며 어울렸고, 남자친구도 사귀었다. 그날은 하교 후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던 날이었다. 학교 언제 끝나나 생각하며 한 교시 한 교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오후에 학생회장 친구가 우리 반에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학생회 임원 중 두 명이 지역 행사에 참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갈 사람에 대한 뽑기를 하라는 거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열 명이 넘는 학생회 임원 중에 설마 내가 걸리겠어, 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뽑았다. 당첨이었다. 학생회장 친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학교 끝나고 동쪽 계단에서 보자며 돌아갔다. 남은 수업 시간은 2교시였고, 정말 미친 듯이 그 지역행사라는 이름의 행사에 차출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나는 끝나고 약속도 있고, 이건 너무 갑작스럽고, 불공평하다고 속으로 외쳤다. 그리하여 종례 시간이 되고 나는 학생회장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은 채 하교했다. 원하는 대로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싫었다. 등교를 하자 예상한 대로 학생회장 친구는 우리 반 교실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그 행사에 갔을 테니 나는 지금의 내가 죽기 살기로 싫어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한 것이었다. 나에게 그 친구가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미안하고, 정말 가기 싫은 마음에 그랬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에게 분노감을 안겨 준 두 아이가, 훗날 나처럼 지난주 금요일 분리수거 사건을 부끄러워하며 떠올릴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어놓은 최소한의 선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현시킨 분노는 결국 내 인생의 부끄러운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감정이라는 것은 참, 한참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반 아이 한 명이 조회하러 가는 복도에서 휴일에 할머니 댁에 갔다가 선생님 드리려고 따왔다며 작은 사과들이 든 봉지를 건넸다. 또 이런 대로 괜찮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며 조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