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교사가 되어 매일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하고 있는 나는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말하는 것 즐긴다. 수업 내용을 마구마구 쏟아내다가 중간중간 생기는 공백을 잘 참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는 자꾸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떠올라 공백을 그것들로 채운다.
나의 수업 시간 아무 말의 시작은 이러하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는 간단히 오늘의 나의 기분들을 두서없이 풀어낸다. ‘얘들아, 너무 배고프지 않니?’, ‘창 밖 좀 봐. 하늘이 너무 예쁘다. 딱 놀러 가면 좋은 날인데, 우리는..’, ‘오늘 급식은 뭐지? 오, 여기에 적어 놓았네. 맛있겠다.’, ‘선생님은 있지 어제 저녁에 운동을 갔는데..’ 이러쿵저러쿵.. 수업에 들어가서는 수업 내용을 말하다가 생각나는 내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아이들에게 생기는 궁금증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최근에는 ‘희곡’ 갈래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희곡이라는 갈래에서는 인물이 내뱉는 대사와 행동을 통해 각 인물들의 가치관에 대해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네 ‘가치관’이 뭔지 아니?”
“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요.”
“응 맞아, 인생을 살아가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가치관이야. 너희의 가치관은 뭐니?”
그랬더니 몇몇 아이들은 ‘돈이요, 행복이요.’라고 대답했고 누군가가 ‘선생님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선생님의 가치관은 안정과 평화, 그리고 내 욕구에 충실한 것이야. 그런데 말하고 보니 이 두 개 서로 상충하는 것들이네. 그래서 아무래도 여러 가치관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겠다. 얘들아 근데, 국어 정말 재미있지 않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라고 했다.
몇몇 아이들은 이런 나의 수업 방식에 대해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나의 수업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결국 수업에서 남는 것은 하나의 에피소드이고, 그 에피소드를 직접 경험했던 대리 경험 했던지 그 경험을 통해 남은 ‘감정’ 일 것이라고.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수업 경험 몇 개를 풀어놓자면 이렇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당시 국어 과목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수업 첫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 수업에서 왕이고 너희는 백성이다. 다만 중간, 기말고사에서 90점이 넘은 학생은 상궁으로 승격시켜 주겠다.’ 이 말과 상관없이 원래부터 국어라는 과목을 좋아했던 나는 중간고사에서 90점을 넘겼다. 중간고사가 끝난 첫 수업 시간부터 선생님은 나를 ‘전상궁’이라고 불렀다. ‘오늘은 전상궁이 ‘님의 침묵’ 한번 외워서 읊어봐.’(님의 침묵은 도대체 왜 달달 외우게 시킨 건지.) 뭐 이런 식이었다. 그 수업에서 남은 감정은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수치심, 옳지 못함 같은 것이다.
물론 좋은 감정이 남은 수업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 국어 수업 시간이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국어를 많이 좋아하긴 했나 보다.) 그때 우리는 한창 수시 원서 작성에 지쳐 있었다. 백발과 회색 양복이 잘 어울리셨던 당시 국어 선생님께서는 수업에 들어오셔서는 지친 우리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시더니 ‘얘들아, 오늘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있지, 이 노래를 들어야 해.’라고 하시면서 다섯 손가락이라는 가수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를 천천히 완창 해주셨다.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며 나에게 남았던 감정은 아마도 따뜻함, 위안, 존경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수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수업을 할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이 남는 수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수업 끝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수업 끝에서 전승희 선생님의 국어 수업 시간에는 웃음, 즐거움, 편안함, 다 괜찮다는 마음들이 남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