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잖아?
"Okay! 계획대로 되고 있어!"
많은 청춘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내용이 다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는 혹은 종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상상이자 로망일 것이다.
나만의 가게, 가게를 넘어선 나만의 회사를 세우는 것 그리고 결국 외식업계의 1위가 되는 것 말이다.
처음 주인공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계획에 주변에서는 그를 애송이마냥 비웃었지만, 결국 주인공 박새로이는 극적으로 모든 계획을 이뤄내고 만다. 그는 중졸에 전과자 출신이었는데도 말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나는 무엇을 하며 열정 없이 청춘을 보냈는가? 나도 꿈이 있었는데 왜 결국 포기하고 말았는가?" 자책하면서도 과연 이게 현실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 진다.
"내 인생을 걸고 해 봤는데 만약 안 되면,
그때 내 청춘 어떡할 건데?"
아, 일단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치자.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것이다.
일찍이 꿈을 찾아 조리학교에 진학하고, 역량을 쌓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고, 졸업 전 유명 호텔에서 실습을 거쳐 내 가능성을 테스트해본다. 그러다 발전의 한계를 느끼면 자신의 레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플랜 B 카드를 꺼낸다.
한정된 우물(한국)을 벗어나기 위해 해외 유학을 떠나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졸업 후 해외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여러 스타지를 거치며 경험을 쌓는다. 그렇게 유명 레스토랑을 전전하다 보면 평생을 걸만한 롤모델 셰프를 만날 것이고 그 밑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그시 경력을 쌓다 보면 언제가 나도 헤드셰프라는 자리에 오를 것이다.
"나는 유명 미슐랭 레스토랑에 헤드셰프 출신이다."
어느 정도 정점에 올라 자신감이 붙게 되는 순간 당당하게 한국으로 금의환향한다. 드디어 고대하던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십수 년의 고생을 청산하고 비로소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걸어 나가는 것이다. 아마 운이 좋으면 그때쯤에는 나의 진가를 알아본 투자자를 만나 더 큰 기업으로까지 키워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얼마나 짜릿한 시나리오인가!
*나의 10년 전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그래 단밤은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지 않았어.. 당신의 마음속에도.."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우리의 상상도 그저 상상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무조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금의환향'이라는 자리는 정말 비좁은 극소수의 자리라는 것이다.
분명 계획대로라면 이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아직 젊고 시간은 많으니까. 소수지만 이뤄낸 선배들이 있고 그 선배들이 걸은 길을 나도 차곡차곡 밟아 나가고 있으니까. 사회에서는 그 방향을 지향하고 주변에서는 그게 맞다고 하니까. 1%의 성공 사례를 강조하며 네가 못하는 건 정신력이 부족한 거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야만 내 어깨를 우쭐하게 해 주니까.
하지만 이런 코스를 밟으려면 10년도 모자라 그 이상이 걸린다. 그러다 보면 내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 물론 경험의 세월은 무시하지 못한다. "몸에 체득된 경험의 자산이 앞으로의 모든 걸 증명해줄 것!"은 드라마 속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삶은 드라마가 아니기에 모든 계획이 성공하리라는 가정은 잠시 미뤄두자.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계획된 조건을 다 갖춰내지 못했다면? 나는 15년을 투자했는데 5년을 투자한 친구가 나를 앞지른다면? 그때 와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칭찬은커녕 여전히 무시와 쪽팔림을 당한다면?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내 인생을 갈아 넣은 요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만둘 수는 있을까? 음.. 차선책은..?
백발이 되고 얼굴에 주름이 져도 마음은 청춘이란다. 사람이란 완벽한 준비를 거쳐 어른이 되지 않듯, 그저 직면하고 경험해보며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 흉내를 내며 살아나갈 뿐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결국 나이는 들어가며 흉내 이상의 계획된 역할을 제때 해내기란 쉽지 않다.
끈질긴 노력 끝에 극적인 결실을 맺을 가능성도 있지만, 모든 상황을 직면하고서도 그 노력을 죽어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운도 따라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파국이다. 결국 온갖 핑계를 대며 조금 편하게 살게 된다.
어떤 분야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그시 기본을 배우고,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요리는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된다. 폭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하나도 제대로 이뤄내기 힘든 현실 속에 다방면으로 신경 쓰기란, 오히려 옛날보다 더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시행착오 속에 조금 더 빨리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발견해야 한다. 만약 20년 전이라면 일단 버티는 게 가능성 높은 배팅 일지 몰라도 지금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요리사라면 말이다. 나를 돌아보고 시시각각 방향 틀 역량을 키우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드라마는 극적인 사건을 의미한다. 가능성은 적지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극적인 성공이 있기까지 꼭 나의 역할이 반드시 주방장일 필요는 없다. 극 중 단밤 성공의 일등공신 조이서에게 "너는 경험이 없는 스무 살 애송이니까 매니저 하기 전에 일단 주방에서 요리부터 배우고 짖거려"라고 했으면? 단밤은 성공을 이뤘을까? 식당을 마케팅하고 경영해나가는 조이서의 역할도 필요하고, 소신 있고 자본이 있는 사장 박새로이도 필요하다. 또한 재무를 관리해줄 이호진과 식당의 본질인 실력 있는 요리사 마현이도 필요하다. 하나의 식당을 운영하고 그 작은 식당이 하나의 회사가 되기까지 그 극적인 순간은 각기 다른 무수한 톱니들이 맞물려 일어난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의 전환을 해보자. '요리를 하는 사람 중에서 요리를 제일 잘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마케팅을, 재무 관리를, 홍보를 가장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전자보다는 비교적 쉽지 않을까?
'해외유학, 미슐랭 레스토랑' 엘리트코스? 멋들어져 보이는 네이밍에만 집착하지 말자. 비단 한국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일단 남들이 하니까 무조건 하자라는 마인드를 잠시 내려놓고 나의 역량으로 요리라는 분야에서 어떤 특색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사람들은 영어를 모든 직업에 필수 불가결한 스펙이라 단정하지만, 당신의 가까운 미래에는 영어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에 투자해야 한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정말로 금의환향을 원한다면 조금 더 확률이 높은 게임 속에 뛰어들어보자.
나는 과연 어떤 조각이 될 수 있을까?
요리를 배웠다고
꼭 그게 실무여야만 하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