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안 하는 개발자의 하루
회사 메신저 단톡방에 링크 하나가 올라왔다. 한 디자이너가 만든 프로토타입이었다. 우리 팀은 전원 개발자다.
링크를 누른 동료들이 놀라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냈다. 누군가 메시지를 남겼다. "이거 진짜 디자이너가 만든 거야?" 나도 클릭했다.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전환되고, 메뉴가 열리고, 목록이 정렬됐다. 실제 데이터가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버튼 몇 개가 눌리는 수준. 그런데 디자이너가 만들어서인지 화면은 깔끔하고 세련됐다.
실리콘밸리에서 AI 때문에 직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었다. 바다 건너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내 회사 메신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디자이너만 변한 게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 나는 에러가 나면 구글에 에러 메시지를 복사해서 검색했다. 비슷한 문제를 겪은 사람의 답변을 찾아 훑는 게 디버깅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에러가 났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답이 안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AI 채팅을 열고 에러 메시지를 붙여넣었다. 원인과 해결 방법이 바로 나왔다. 정확했다. 그날 알게 됐다. 답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AI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 수 있다는 걸.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AI가 개발 도구 안으로 들어왔다. 내 프로젝트 코드 전체를 이해한 상태에서 대화할 수 있게 됐다. 디버깅만 시키던 걸, 개발 계획부터 코딩까지 맡기게 됐다.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개발자인데 개발을 내가 안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하루는 이렇다. 출근하면 AI와 함께 개발 계획을 세운다. AI가 실수할 만한 부분은 미리 짚어준다. 참고할 코드와 문서, 회의록을 넘긴다. 실제 코딩은 AI가 한다. 개발이 끝나면 함께 테스트하고, 내가 눈으로 확인한다. 부족하면 다시 지시한다. 이 흐름으로 보통 두 개 이상의 일을 동시에 돌린다. 한 주의 생산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AI도 만능은 아니다. 최신 라이브러리나 사내에만 있는 비공개 로직은 잘 모른다. 그럴 때는 내가 직접 설명해준다. AI의 부족한 2할을 내가 채우면, 나머지 8할은 거뜬히 해낸다.
코드를 짜는 건 AI고, 나는 옆에서 지시하고 검토한다. 이쯤 되면 명함에 개발자 대신 'AI 조련가'라고 적어야 할 판이다.
'잘한다'의 뜻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 분야를 깊이 파는 게 실력이었다. 지금은 AI 덕분에 한 사람이 여러 전문가가 협업한 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됐다.
그 프로토타입은 버튼 몇 개가 눌리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가끔 생각한다. '개발자'라는 내 직함이, 1년 후에 어떻게 바뀔지.
기술 Tip
- AI에게 코딩을 맡기기 전에 계획 문서를 먼저 만들자. AI가 실수할 만한 부분을 미리 짚어주면 결과물의 품질이 올라간다.
- AI는 최신 정보나 비공개 정보에 약하다. 관련 문서를 직접 넘겨주는 습관을 들이면 AI의 한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 한 가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AI가 코딩하는 동안 다른 일의 계획을 세워라. 동시에 여러 작업을 돌리는 것이 AI 시대의 멀티태스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