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가 참 시끄럽다.
쏟아지는 빅테크 소식에 피로감을 느낀다.
세상이 곧 뒤바뀔 것처럼 요란한 헤드라인을 보면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늘 한쪽 귀를 기술 동향에 열어두려 애쓴다.
스쳐 지나가는 뉴스 한 줄이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대기업 IT 계열사에 합격했다.
한 학기 취업 재수 끝에 얻은 결과라 기쁨은 두 배였다.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신입 연수 때는 춤추는 과제마저 삐걱거리는 몸으로 절도 있게 추고자 노력했다.
연수가 끝나고 나의 뼈에는 기업의 로고가 새겨졌고, 회사는 '신사업 기획 최우수상'으로 보답했다.
그 후 그룹의 금융 계열사 IT 부서로 발령받았다.
밥 잘 사주는 따뜻한 선배들, 체계적인 시스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직장인에게 고비는 3년 차에 온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설렘을 잃어버렸다.
신입 때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지만, 3년 차가 되자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어졌다.
에러가 뜨기도 전에 원인을 알았고,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의 사수 역시 나와 비슷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휴게실에서 사수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일랜드로 교환학생 갔을 때가 진짜 행복했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우린 이제 다른 일을 찾기엔 너무 늦었어."
휴게실의 공기는 여느 날처럼 평범하고 고요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이 나에겐 비명처럼 다가왔다.
선배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견고한 시스템은 안정적이었지만, 개인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진 않았다.
이직하기엔 전문성이 부족했고, 신입으로 돌아가기엔 나이가 걸렸다.
우리는 안락한 새장에 갇힌 새였다.
물론 보잘것없는 나를 뽑아준 회사 탓을 할 마음은 없다.
다만 나는 성장이 멈추면 금세 시들어버리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그 무렵, 뉴스에서 'AI가 데이터베이스를 자동으로 관리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나와 사수가 신입 때부터 줄곧 해오던 바로 그 일이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와 사수의 책상을 없애버릴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을 동력 삼아 움직이기로 했다.
입사 4년 차, 나는 AI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들처럼 사표를 던질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직장과 학업의 병행이었다.
대학원에는 나와 비슷한 불안과 꿈을 안고 온 사람들 가득했다.
그 치열함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논문을 쓰려니 절대적인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다.
주말을 모두 반납하고 실험에만 매달렸다.
몇 달을 그렇게 매달렸는데도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실험은 실패하고,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모니터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논문 제출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눈물을 닦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뿌연 시야로 코딩을 하고 글을 썼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니 거짓말처럼 막판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덕분에 최우수 연구상을 받으며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내가 다니던 금융 계열사가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다.
영원할 것 같던 선배들이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떠나는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회사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으며, 나를 지키는 건 오직 나만의 전문성뿐이라는 것을.
그 무렵 나도 판교의 한 IT 회사 AI 엔지니어로 이직했다.
만약 이전 회사에서 접한 AI 뉴스를 "먼 미래의 일"이라고 그냥 넘겼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쯤 나는 인사팀의 통보에 내 운명을 맡긴 채, 사수와 똑같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안해서 시작한 공부가 나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물론 AI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AI 엔지니어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판교로 건너온 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안온한 새장을 벗어나 야생과도 같은 이곳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내 다음 글을 기다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