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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30. 2024

나의 모든 조각을 모아도 온전한 내가 아닌 #4

"우리 그냥 병으로 시킬까?"

"왜?"

"벌써 3잔씩 마셨는데 계산 해보니까 한 병 시키는게 훨씬 경제적이야."

"저번에는 다양한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다면서?"

"그랬나? 취하면 어차피 다 똑 같아. 계속 한 잔씩 시키려니까 바텐더 눈치도 보이고. 어때?"

"그러든지."

"그럼 뭘로 한병 시키지? 니가 골라봐."

"피트향 강한 걸로 하자. 라프로익이나 아드벡 같은 거."

"난 피트향 싫은데. 꼭 화장품 먹는 것 같잖아. 그냥 좀 달짝 지근한 맛이 있는... 글렌 모린지 어때? 나 오리지널은 먹어 봤는데, (바텐더에게) 저기 라산타는 뭐에요? 비싸요?"

바텐더가 글렌모린지 라산타를 병으로 가져와 오픈했다. 

"시간이 이렇게 됐나? 계속 떠들었더니 배고프다. 라자냐 하나 더 시킬까?"

"마음 대로."

"야, 넌 성의없이 맨날 마음대로 하래. 그러니까 니가 여자들한테 인기 없는 거잖아."

"여자들만?"

"쓸데 없이 따지기는. 그래, 남녀 할 것 없이 인기없어. 좋냐? 인기 없다는데."

"나쁘지는 않아."

"나쁘지 않다니. 아까는 인기 없어서 싫다고 했잖아."

"내가 재미 없냐고 물었지. 인기가 아니라."

"그거나 그거나."

"사실 모두에게 재밌지는 않아도 돼. 그냥 몇 명에게만 재밌으면 좋겠어."

"몇 명 누구?"

"그녀하고, 또... "

말이 중단됐다. 

"그게 다냐? 더 없냐? 나한테는 재미없어도 돼?"

"내가 재밌기를 원해? 재미로 나 만나는 거야?"

"그건 아니긴 하지."

"사람들이 아무 조건없이 그 사람만 좋아할 수 있을까?"

"갑자기 뭔 소리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

"외모가 마음에 든다거나, 성격이 좋다든가, 아니면 조건이나 능력, 직업 같은 거."

"아. 그 조건. 그게 뭐 조건이야. 그건 그 사람에게 포함된 거지. 외모, 성격, 직업도 안 보면 뭘 보고 사람을 만나? 다 똑같은 인간인데."

"그렇긴 하네."

"솔직히 말해봐. 그녀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거지?"

"...."

"맞잖아. 이 형아가 좀 가르쳐줄까? 네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

"내 매력이 뭔데?"

"그야 당연히.."

"당연히 뭐?"

"... 그건 최후의 비장의 카드로 남겨두자."

"뭘 남겨두는데?"

"아 쫌. 너 그 집요한 거부터 버려. 그냥 넘어가는게 없어. "

"알았어."

"너는 일단 아는게 많아. 그리고 아는 걸 말할 때 눈이 반짝반짝해."

"정말 그래?"

"거기다가 가끔은 재밌어. 자만하지마. 아주 가끔이니까. 그리고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있어."

"학과에서 수강생이 늘 적은데.."

"그건 임마. 니가 홍보를 못하니까. 그래도 강의평가는 좋다면서?"

"조금"

"그러니까 일단 듣게 만들어야지. 강의를 들어야 좋은 것을 알고. 더 집중하고. 아! 지금 내가 뭔가 되게 맞는말 한 것 같은데. 그래, 네 매력을 어필하려면 어필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좀 후킹할 수 있는 건수가 있어야겠다."

"후킹?"

"그녀를 유혹할 수 있는 건수 말이야."

"내가 유혹하라고?"

"그런 유혹이 아니라 너의 매력을 캐치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줘야 하는 거라고."

"어떻게?"

"있어봐. 나라고 탁탁 방법이 떠오르냐? 일단 레스토랑을 통채로 임대해. 그 정도는 가능하지?"

"왜 그래야 하는데?"

"드라마 보면 있잖아. 레스토랑 전체를 빌려서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드럽게 비싼 음식과 와인을 주문하고. 그러면 그녀가 딱 알아볼 거 아니야."

"뭘? 내가 돈 많다고?"

"아니, 임마. 이 남자 진심이구나."

"아닌데. 속물 같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해봤어?"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아?"

"아무튼 안 할래."

영호는 시영의 표정을 보고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저런 표정을 지을 때 시영은 고집불통이다.

"라자냐, 내가 알아서 시킨다. (바텐더에게) 여기 시그니처 라자냐로 주시고, 토마토 소스를 좀 적게 넣어 줄 수 있죠? 전에 보니까 좀 신맛이 강하던데."

시영이 받아 놓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위스키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남아있는 노란 액체를 슬쩍 흔들어 보고는 마실까 말까 망설였다.

"난 매력이 없어. 누가 날 좋아하겠어."

"..."

"내가 매력이 없으니까 내 글도 매력이 없고. 책도 안 팔리고."

"..."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사이 주문한 라자냐가 나왔다. 영호가 포크를 들고 개걸스럽게 먹기 시작한다.  

"라자냐 안 먹어? 내가 다 먹어도 돼?"

"응."

"여기 시그니처 라자냐 맛있는데. 아, 넌 먹어봤나?"


그라츠 바에 처음 온 손님은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게 있다. 그 중 하나는 음악이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지만 확실하게 있다. 재즈 선율. 

시영은 무심결에 재즈 선율에 맞춰 건반을 치듯 손가락을 토닥거렸다. 처음에는 오른손으로만, 그러다가 왼손까지 슬그머니 올라와서 정말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바 테이블 위를 노닐었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조명에 반짝이는 것 같다. 


"요즘은 피아노 안 치지?"

"그냥 가끔."

"하긴 비싼 피아노 놀리면 뭐하냐?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음대에 갈 걸 그랬어. 그지?"

"음악 계속 했어도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그점에서는 부모님이 옳았지."

"뭐래? 말도 없이 잘 다니던 공대 때려친 게 누군데.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에서 쫓겨나서 한밤중에 나 찾아왔던 일이."

"쫓겨나지 않았어. 내가 나왔지."

"그거나 그거나. 등록금 마련하다고 겨울 내내 알바하더니 기어코 철학자가 되셨지."

"철학자는 아니고."

"그래도 교수잖아."

"강사."

"야, 학생들이 너한테 강사님, 이렇게 불러? 교수님이라고 불러?"

"교수님."

"그럼 교수지. 교수가 별거냐? 대학에서 가르치면 교수지."

"달라."

"모르겠고. 네 엑스는?"

"잘 있어."

"당연히 잘 있겠지. 그 여자는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쎄 하더라구. 이혼절차는 완전히 끝난 거지?"

"이혼신고 아직 안했어."

"왜? 그거 석달 안에 안하면 말짱 도루묵인 거 알지?"

"그런가?"

"야, 정신 똑바로 차려. 이혼 확인서 언제 받았어?"

"지난 달에."

"아직 여유있네. 그래도 잊지 말고 이달 안에 꼭 신고해. 다시 그 여자랑 엮이고 싶지 않으면."

"나랑 엮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자학모드 그만해. 넌 아무 잘못 없어. 그 여자가 이상한 거지. 얘기 그만하자. 기분 나빠졌어. 술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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