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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별할 때 가장 사랑한다.

여행 7일차

by 시sy

탕헤르를 떠날 때가 돼서야 탕헤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카사블랑카 행 고속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을까 생각했던 1시간 전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아프리카 대륙을 달리는 기차라서 뭔가 색다른 것을 기대했지만, ktx와 그리 다르지 않다. 모로코나 한국이나 모두 프랑스의 떼제베를 모델로 만든 고속기차라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기대와 달리 초록이다. 뭘 기대했던 것일까? 황량한 아프리카? 왜 남들은 황량한 곳에 살기를 바라는 것인지.


언제나 탕헤르 해변에 서서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아스라히 보이는 이베리아 반도를 향하며 바닷 바람을 맞는 장면을 꿈꿔왔다. 실제 꿈이 이뤄졌는데 현실과 꿈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나는 아직 탕헤르에 도착하지 못한 것일까?

하얀색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메디나의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느꼈던 감정은 피로함이었다.

빈곤과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이 있을 뿐, 그 어느 곳에도 낭만은 없다.


왕복 8차선 도로에 차들이 엉키는 혼란함과 그 속으로 뛰어들어 무단횡단하는 인파, 호텔 창문 밖으로 들리는 소음, 밤새도록 큰 소리로 떠들다가 동틀 무렵이 돼서야 도시는 평안을 찾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살고 있다. 여행도 똑 같다. 너무 많은 기대 때문에 도착해도 도착하지 못하며, 가지고도 소유한 것을 모른다.


이번 생에, 당연히 생은 한번 뿐이겠지만, 다시 못 올 가능성이 큰 도시, 탕헤르.

이곳을 떠나고서야 다시 탕헤르를 생각한다.


나는 또다시 이별할 때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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