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남자들은 섣불리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주 앉아있는 남자와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에 공기의 변화를 느끼면 어김없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
"당신이 궁금해졌어요. 당신을 좀 더 알고 싶어요."
남자는 그걸 호감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에 두근거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에는 언제나 정확한 불쾌를 느꼈다. 그 말 깊은 곳의 무의식을 내가 간파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둘이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무색하고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말이었다. 이미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를 밟은 게 아니었던가? 지금껏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무엇이 궁금해졌으며 뭘 더 알고 싶다는 것일까?
얼마나 실례되는 말을 내뱉은 건지도 조차 모르고 해맑게 발정 난 걸 감추지 못하다니. 쓸데없이 많은 호기심을 마치 탐구정신이라도 탑재한 것처럼 지금 당장 자신의 궁금함을 풀어야겠다고 그걸 풀어줄 의무가 내게 있는 것처럼 빚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너무 당당하게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남자들에게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인간의 이해’라는 대학 교양 강좌를 듣는 것도 아닌데 남자들은 어느 시점에서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건 호감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상대의 호의를 너무 나쁜 쪽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냐 물을 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사람들은 결코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절대라는 표현을 쓸 만큼 이건 너무나 절대적이다. 내게 '궁금하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은 남자들은 언제나 그것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내가 ‘새로운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런 말을 듣는다고 '저 자식이 내게 넘어왔군.'하는 우쭐한 기분 같은 것도 들지 않는다.
남자들이 그렇게 쉽게 입 밖으로 꺼내 말하는 '궁금함'이란 인간 탐구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저 몇 번의 섹스면, 몇 번도 필요 없고 날 한 번 안고나면 소멸해 버릴 그런 종류의 호기심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호기심을 성급하게 드러내는 남자들은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런 호기심은 표피에 머문다. 저 여자의 신음은 어떨까? 저 여자의 일그러진 표정은 얼마나 날 흥분시킬까? 저 여자의 몸은 어떠할까? 저 여자의 몸 안은 얼마나 따뜻할까? 차라리 솔직하게 나를 안고 싶다고 했다면 Yes or No 50%의 확률로 대답을 해주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하다고 말하는 순간 확률은 0%가 된다. 누군가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선 섣부른 호기심과 충동이 아니라 탐구정신과 인내가 필요하다. 저돌적일 뿐 곧잘 지치고 마는, 내 진피를 뚫고 들어오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궁금하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남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지 눈치 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추한 호기심을 끝내 감추지 못하고 누설하는 멍청함은 무례하다. 그런 남자들의 호기심이라는 건 한결같이 낯선 여자에게 작동한다. 낯설어봐야 특별한 거 없는 그래서 매번 실망이나 하는 걸 반복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작동한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이런 남자들이 내뱉는 말도 뻔했다. “여자는 삽입을 하는 순간 다 똑같아진다.”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이 궁금해요.”라고 말한다고 나에 대해서 더 알게 되는 사실은 하나도 없다. 애정에 굶주려 그걸 자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라 착각하는 여자들에게는 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나불거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호기심이 있다는 건 아직 삶의 생기를 간직한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눈앞에 실체를 두고 입 밖으로 호기심을 언급하는 건 변덕스럽고 싫증을 잘 내는 남자라는 증명일 뿐이다. 안다는 것은 바라봄에 있다. 오래 지켜봄에 있는 것이다. 시간의 공을 들이지 않으려는 이기심에 들뜰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에 덧붙여 너무나 궁금한다 알 수 없는 여자에게 "넌 너무 신비해."라고 말해버리면, 너무나도 명확한 여자에게 신비롭다는 수식을 더해 버리면 그땐 정말 견딜 수 없어진다.
“신비주의는 정말 신비로워서가 아니라 가려야 할 흠이 많다는 걸 모르는 멍청이들!!! 대체 뭐가 신비롭고 뭐가 궁금하다는 거야. 말 안 하면 신비롭냐? 안 만나주면? 안 자주면?”
이렇게 버럭 하게 되는 것이다.
안전한 남자들은 섣불리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알게 될 것은 결국 알게 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