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게도 욕정을 느낄 수 있는 남자라서 다행이었다
스물한 살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서른셋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겪은 두 번의 장례식.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두 가지는 내가 상복마저 잘 어울린다는 것과 장례식장에서도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건 남자밖에 없다는 것.
검은색 클러치백에서 립스틱을 꺼내 입술을 좀 더 붉게 물들였다. 검은색 상복에 붉은색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흡연 장소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립스틱이 선명하게 묻어나온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깊은 연기를 내뱉는 나를 보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내 알바는 아니었다.
내게 성적 판타지가 무엇이냐 묻는 남자들이 종종 있다. 나랑 자는 사이도 아니면서 그런 게 왜 궁금한 것일까? 그런 걸 알게 되면 성적 끌림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혹은 자신이 나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식으로 운을 띄워보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어쨌거나 그때까지 나의 로망은 세 명의 남자와 하는 포썸이었지만,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오늘부터는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싶은 게 문득 떠올랐다. “두 번째 남편 장례식장에서 남편 제자랑 하는 거요.”
남자는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위로를 받아야 할 만큼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 자체가 지옥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는 부글거리는 욕망에 휩싸여있었다. 인지가 없는 상태에서 앙상하게 마른 몸은 깨어있었다. 깨어 있는 몸은 심하게 몸부림을 쳐대기 일수라 침대에 사지를 결박해 놓은 상태였다. 자신이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신음하는 모습은 끔찍했다. 아무 의미없이 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어쩐지 공포스러웠다. 옆 침대에 있던 다른 할아버지는 부끄러움도 없이 쾌락에만 집중하겠다는 듯 환자복 위로 자신의 페니스를 만지고 있었다. 그 역시 무의식으로 행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장면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할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길 빌었다. 의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 안심할 수 있었다.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한 일인가.
집안의 어르신이 모두 부재하게 된 상황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보느라 우울한 것 같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도. 어떤 자극을 주더라도 나를 일깨우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빠져있었다. 그 상태가 나쁘진 않았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만큼이나 죄의식도 없었다.
상복을 벗자마자 자신에게 달려드는 나를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해를 바란 적이 없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도 내게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절망스럽지 않았던 건 “그래도 그게 너라니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말이다.”는 말 덕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게도 욕정을 느낄 수 있는 남자라서 다행이었다. 그의 바지는 이미 불룩해져 있었고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자마자 탱탱한 자태를 숨기지 못하는 페니스 역시 죄의식이 없어 보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건 겁이 나지만, 섹스하긴 어렵지 않은 남자의 태도에 감사해야지. 아직 젖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의 것을 붙잡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뻑뻑하게 살이 밀리던 고통은 신속하게 쾌감으로 변했다. 내 몸에 꼭 맞게 새겨지는 그의 것을 느끼자 내 몸 안에서 미끈함이 스며 나왔다. 조심스럽던 그의 움직임은 거침없고 자연스러워졌다. 유일하게 생동감이 넘치고, 감각적으로 살아있다는 걸 잠시라도 느낄 수 있을 때가 남자와 섹스할 때, 아니 섹스라는 말보다 Fuck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Fuck 할 때이지. Fuck me up!
“전 카뮈를 좋아해요. 특히 이방인.”
촬영 장소를 헌팅하다 알게 된 장소였는데 여기서 술 한 잔 하고 싶었다며 당시 연재하고 있던 잡지의 에디터가 불러냈다. 술을 파는 바라기보다는 서재 같은 공간처럼 보였다. 바를 운영하고 직접 칵테일을 만드는 남자에게 에디터가 책이 많다고, 누굴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남자가 대답했다.
아아. 실존주의. 피식 웃었다. 남자가 만들어준 마티니가 맛있어서 그 말이 더 웃기게 들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무표정하게 있던 남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도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책도 아니었는데 이방인의 첫 문장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의 첫 문장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이방인의 구절을 기억하고 있는 건 역시 죄책감 때문이었다.
무더위가 막 시작된 여름 칠월 초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 가신지 사흘째 되던 날, 할머니께선 어머니에게 여기에 못 있겠다며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하셨고 주말에 모시러 가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실 정도로 위독하셨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비난할 곳이 필요했다. 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독단적인 선택이 할머니를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큰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의 공기를 견딜 수 없었다. 상실의 슬픔, 죽음의 공포 이런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슬퍼하고 통곡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일까?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집안의 피가 그런 것일까? 살인자들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할머니가 염해지는 장면을 보면서 오열하며 우는 건 가족과 친척들 중 어머니 하나였다.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먼저 집에 가있으라는 집안 어른의 말이 그렇게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어렸을 때라지만 할머니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의사결정이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초등학생이었던 사촌동생들에게 어린이용 만화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고는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상복을 입은 채로 자위를 했다. 깊은 곳에서 서서히 흥분감이 밀려올 수 있도록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곧 격렬하게 몸을 만졌다.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축 늘어질 수 있었는데, 의식이 어딘가로 넘어갈 때마다 제3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랬던 것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부도덕하게 느껴졌다. 그 사실에서 다시금 쾌감을 느꼈다.
할머니의 죽음과 여름은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흘러가버린 일이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문학 수업에서 텍스트로 카뮈의 이방인을 다루게 되었다. 이방인을 읽으면서 안도감마저 느꼈다. 나의 가망 없음에 대해.
에디터는 진토닉 다섯 잔에 취해 먼저 집에 가보겠다고 일어섰다. 나는 좀 더 마셔도 될 것 같았다. 몇 시간째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었고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빌 에반스의 Here's that rainy day를 틀었다. 세상이 젖어드는데 나라고 건조하게 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 책의 첫 구절을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행동이 트리거가 되었다는 건 알겠다. 의도가 없었던 만큼 의도치 않은 남자가 내게 다가온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서둘러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쁘지 않은 얼굴, 말랐지만 필요한 근육은 발달되어 있는 몸, 칵테일을 맛있게 제조하는 재능. 그런 것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서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콘돔은?”
남자는 뒷주머니에서 콘돔 포일을 꺼내서 흔들어 보였다. 그 정도 준비를 하고 들이대는 거라면 휘말려도 나쁘지 않지. 바의 구석에 놓인 소파는 둘이 뒤엉켜도 충분해 보이는 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