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과 함께한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올해 1990년생들은 서른이 되었다.
88올림픽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노태우(대통령이던 시절의 기억은 없지만 감옥에 간 건 기억난다),
김영삼(금융실명제(어려서 그게 뭔지는 몰랐다), 역사 바로세우기(국민학교가 초등학교가 됐다), IMF),
김대중(취임식(에 등장한 마이클 잭슨)과 남북정상회담, 911 테러, 노벨평화상)을 거쳐
노무현(탄핵,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사시 폐지),
이명박(글로벌 금융위기, 미국산 소고기 시위, 반값등록금, 4대강),
박근혜(박정희, 사드, 승마, 탄핵),
문재인(트럼프, 김정은, 적폐청산, 조국으로 기억될지도 모르는)을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에서 서른 해를 달려왔다.
한편, 한국의 90년생은
<투캅스>(1993)를 조금 더 자란 후 TV나 비디오로 보았고,
<쉬리>(1999)의 성공을 기억하며,
<엽기적인 그녀>(2001)로 Y2K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감독님이
<올드보이>(2003)로 외국에서 훌륭한 상을 탔다는 보도에 의미도 모른 채 흥분했고,
어린 시절부터 스타였던 전도연과 김민희가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것을 보았으며(<밀양>(2007),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봉준호 월드의 확장(아마도 <살인의 추억>(2003)에서 <옥자>(2017)까지)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고,
<기생충>(2019)의 황금 종려상 수상에 함께 감격한 세대이기도 하다.
어떤 90년생들은 성인이 된 이후, 옛 홍콩영화들을 찾아보며 반환 이전의 홍콩(<중경삼림>(1994))을 추억하고, 시위로 들끓는 2019년의 홍콩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장국영과 양조위는 1999년에도, 2019년에도 아시아의 최고 스타다.
이소룡(1940~1976)의 전성기는 보지 못했지만, 이연걸과 성룡을 보며 자랐고 견자단의 영화도 꽤나 좋아한다.
<쥬라기 공원>(1993)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아직도 재밌는 영화(<레디 플레이어 원>(2017))를 찍고,
고3때 본 <다크 나이트>(2008)를 잊지 못했는데, 벌써 직장인이 되어 새로운 <조커>(2019)를 맞이했다.
서른 해 동안 세상은 자주 삐걱댔지만, 여전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소중한 감독과 배우들을 해마다 잃지만, 지금도 훌륭한 영화들이 탄생하고 있다.
영화는 계속되고, 관객의 삶도 계속된다.
나 또한 생각과는 조금 다른 서른이 되었다.
서울 외곽의 공립 초등학생에서 재수생, 대학생, 가까스로 취업한 4년차 회사원이.
부모님이 걱정하던 조용한 아이에서 독립한 사회인이.
어릴 적부터 특별한 꿈은 없었지만 지금의 평범함에 안도하지는 못하는 사람이.
10월의 가을바람이 서른의 마지막을 밀어내기 시작하는 지금,
그 서른 해의 기억조각들을, 함께한 이들을, 그때의 온도를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이야기를
브런치에 기록하고 공유해 보려고 한다.
이어질 글의 배경에 공감하는 분이,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
그리고 아직 보지 않은 영화들이 보고 싶어지는 분이 계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겠다.
빼어나게 행복하지도, 특출나게 불행하지도 않았던 한 90년생의 삶을
다소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준 멋진 영화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 이 브런치북의 제목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에서 따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