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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Dec 02. 2023

평안을 바라는 게 습관이 되어서

이별

그의 집에 도착했다. 웃음을 잃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은 소리 없이 떨려왔다. 꾹 닫은 입 속에 숨긴 말이 무엇인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래서 그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기꺼이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를 토닥이는 게 오지랖같이 느껴져 목 끝까지 차오른 물음을 다시 삼켰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좋은 사람들은 많이 만났는지. 한쪽 귀로 흘러 나갈 이야기는 이제 그만이었다. 나는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진심을 전했다. “나는 이제 괜찮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어. 내 삶은 내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흘러가고 있어.”


어색하게 날 바라보던 그의 눈이 초점을 찾았다. 다시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너를 만나 참 다행이었고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나는 생긋 웃어 보였다. 그는 애꿎은 이불을 만지작거리다 강아지 우주에게 푹 덮어놓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우리 참 많은 일이 있었잖아. 시간이 조금 필요해.”


우리는 서로에게 절제된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서로를 꽉 안았다. 나의 귀는 그의 귀에 맞닿았다. 나의 손은 그의 등을 연신 토닥였다. 오지랖이어도 좋으니 그 순간만큼은 그가 내게 기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를 더 꽉 안았다. 좋을 날이 올 거라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속삭였다.


마음 한 구석 마지막이라는 생각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자리싸움을 하는 동안 시간은 헤어짐을 맞이했다. 그만 일어나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달 전 그의 집에 두었던 짐들을 마저 챙겼다. 그가 홀로 남겨져 오롯이 감당하던 짐들이 이제는 내 것이 되었다. 이삿짐과 함께 딸려 온 그 마음들을 이제는 내가 감내할 차례였다.


후련할 줄만 알았던 마음은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마음은 여전히 그의 평안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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