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투성이 카우보이의 명예율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메리칸 스나이퍼>(2015)

by 미도파

크리스 카일의 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인간을 세 가지의 부류로 나눠서 설명한다. 죄 없는 양을 공격하는 늑대, 악마의 존재를 모르는 양, 그리고 늑대에 맞서는 양치기 개가 있다. 네이비 씰에 입대한 크리스는 아버지의 말처럼 ‘양치기 개’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스나이퍼>의 서사는 크리스의 양들을 지키기 위한 시도들이 어떻게 흔들리고, 자신이 지켜왔다고 생각한 공동체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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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에서 쿠리바야시 중장은 몰락하는 제국의 허약한 명예와 황야를 지키던 웨스턴의 영웅이었다. 쿠리바야시같은 ‘서부 사나이’는 개인과 국가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을 겪는다. <아메리카 스나이퍼>의 크리스 카일 역시 ‘명예율(code of honor)’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는 쿠리바야시에 비해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이다. 첫 사살이 끝나고 크리스가 막사로 돌아왔을 때, 전우 비글스는 슈퍼히어로물 「퍼니셔」를 읽고 있다. 악당이라면 자비심 없이 해치우는 응징자인 ‘퍼니셔’처럼 그는 신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흉포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코란을 들고 있는 민간인을 쏘지 않았느냐는 상부의 경고에도 크리스는 자신이 AK47 소총을 들고 있는 야만인을 쏘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공동체와 야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호한 서부 영웅이 아니다. 읽지 않는 성경 속의 주님과 국가를 믿는 것만큼 저격용 총 앞의 그에게는 훨씬 단순한 윤리적 규율이 필요하다. 조준경 너머로 악마와 싸우고 있다고 믿는 그에게 “악마는 어디에도 있다.”는 동료의 말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크리스 카일의 정의감은 지나치게 자아도취적이다. 이는 무스타파와의 대결 구도에서 두드러진다. 2차 파병에서 크리스가 알카에다의 자르카위를 추적하는 시퀀스는 ‘크리스와 시리아의 명저격수 무스타파의 대결’ - ‘족장 아들의 죽음’ - ‘미국에서 통화하는 아내’ 크게 세 장면으로 구성된다. 아내와 통화하고 있던 그는 습격을 받고 자르카위 일당과 총격전을 벌인다. 그 와중에 족장 아들은 전기 드릴로 머리를 뚫려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족장 아들의 죽음과 고통스러워하는 족장 아내의 모습은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크리스에게 이상하리만큼 차단되어있다. 그는 고통스러운 처형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무스타파와의 대결에만 온 집중을 쏟는다. 해당 시퀀스의 구도는 영화의 서사에서 반복된다. 네이비 씰이나 작전과 관련 없는 사건들은 표면적으로는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소외는 외상의 형태로 드러난다. 크리스는 텍사스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그가 구했던 상이군인을 만난다. 크리스를 정작 자극하는 것은 상이군인의 존경심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그가 외면했던 드릴소리이다. 가정으로 돌아온 크리스는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무능한 가장일 뿐이다. 전쟁의 굉음 속에 작전을 수행할 때에만 그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크리스와 무스타파의 대결은 네 번에 거친 파병에서 가장 주요한 대결 구도이다. 크리스가 전쟁을 내심 즐기듯이 그 대결구도가 전쟁영화로서 관객에게 가장 많은 스펙터클과 쾌감을 안겨준다. 무스타파가 죽을 때 크리스의 총알이 느린 동작으로 날아가는 전형적인 장면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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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의 성조기 이미지와 더불어 무스타파와의 라이벌 구도가 주는 장르적인 쾌감은 많은 관객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프로파간다 영화로 오해하게 했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현대 미국의 영웅을 옹호할 수만은 없는 인물로 그렸다. <그랜 토리노>(2008)에서 죽음을 각오한 월트가 타오에게 원죄를 고백한다. 그는 신부와의 고해성사 때 말하지 않았던 한국전쟁에서 소년병을 죽인 일을 털어놓은 후, 타오에게 말한다. “너는 그러면 안돼.” 폭력에 대해 속죄하는 코왈스키와 달리 크리스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규율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파병에서 돌아온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어두운 바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그는 코왈스키처럼 인정하기 싫은 폭력의 원죄를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 후의 그는 여전히 군인들의 공동체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대한 그가 카우보이 벨트를 차고 아내에게 총을 내밀며 속옷을 벗으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총이 얼마나 많은 양들을 죽였는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스트우드가 바라보는 크리스 카일은 카우보이 벨트가 가져다주는 명예에 취해 말에 떨어진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는 어수룩한 카우보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크리스보다 더 순진한 사람들은 피로 얼룩진 카일의 영웅담을 가리키며 찬미하거나 심지어는 극단주의 무슬림을 추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내재한 전쟁의 모순되는 가치들은 전형적인 영웅 신화로 오독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