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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Mar 02. 2022

부모님께 통보하기

Ep 4. 4년 준비한 미대를 한학기만에 자퇴하기까지


혼자 자주 가지도 않던 카페에 가 (일부러 동네 카페 중 넓은 곳을 골랐다. 마주해야 될 긴장을 그 넓은 공간이 조금이나마 분산시켜주지 않을까 하여.) 1시간가량 핸드폰에 편지를 썼다. 그정도 쓰고 고침의 반복이라면 ‘작성하다’보다는 ‘쓰다’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쓰다가 실수로 전송 버튼이라도 눌러버릴까, 대화창이 아닌 메모장에 미리 쓸 정도로 손이 떨렸던 편지. 보내기 직전까지 보낼까? 보낸다?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들과 난리를 떨었다. 전화까지 했었던 것 같기도 같고. 편지의 내용을 이 곳에 옮겨 적기 위해 그것을 다시 찾아보기에는 아, 벌써부터 얼굴이 달아올라 안되겠다. 약간의 기억을 옮기자면


‘한 달 동안 고민해봤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기 위해 ‘자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라서 엄마 아빠와 함께 이야기하는 건 맞지만, 엄마는 요즘 전시 준비로 바쁘니깐 우선 아빠랑 얘기해볼까 해. 다만 아빠 생각에 엄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같이 와 줘. 엄마 아빠가 자주 가는 ㅇㅇㅇ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어’


정도. 카페에 오기 전까지 봤던 모습대로라면 엄마는 작업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아빠는 책상에서 책을 읽다가 딸의 메시지를 받았으리라.

읽었다는 표시로 사라지는 1이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예상보다는 빠르게 사라진 1과 꽤 오랜 시간 오지 않는 답장은 참 곤욕스러웠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와 함께 갈게. 라며 답장이 도착했다.

남은 것은 부모님을 기다리며 할 말을 정리해보는 것 밖에 없었다. 출입구를 마주 보고 앉으면 부모님이 들어오자마자 눈을 맞추어야 하기에 부러 등을 보이게 건너편으로 옮겨 앉았다. 그 날 따라 그 큰 카페에 손님은 왜 이렇게 없던지.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원망스럽게도 1-2팀 밖에 없었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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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 한마디는.

으이구,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 뒤는 두 달간 친구들에게만 나눌 수 있던 응어리들을 전부 내뱉는 것뿐. 내 안에선 덜도 말고 두 달을 꽉 채운 얘기들이었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마냥 낯선 얘기들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낯섦까지 배려할 여력이 21살에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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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은 그다지 길진 않았다.

화가인 엄마와 그림 그리기가 취미있 딸. 자연스레 입시미술을 3년간 했고, 떨어졌기에 재수를 했고, 붙어서 미대를 갔다. 그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대학교 첫 방학이 되고 숨 쉴 구멍이 생기자 그때서야 어긋난 무언가가 느껴졌다. 엄마 덕에 전시회, 갤러리라는 곳은 어릴 때부터 익숙한 곳이었지만 항상 그다지 흥미는 없었다. 그럴 수 있지 정도로 묻어뒀던 것이 그때서야 슬금슬금 마음을 파고 올라온 것이다. 내가 여가시간과 돈을 취미에 쓸 때, 동기들은 전시회를 보러 갔다. 타학교의 졸전을 찾아갔고, 각자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다. 그게 뭐 큰 대수라고 싶지만 꽤나 큰 충격이었고 우습게도 이게 자퇴의 계기다. 미술을 전공으로 삼을만한 정이 없구나.  그 후에는 있는 정 없는 정 다 털었다지. 여름방학이 끝나 개강을 하면 휴학을 해야지. 마음먹은 게 겨우 1학기를 들은 후였으니 적잖은 충격이었나보다.


 주저 없이 알아본 휴학 절차에서는 문제가 생기고 만다. ‘1학년은 휴학이 불가함'.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한 학기를 더 다니고 2학년이 되면 휴학, 혹은 자퇴.


선택지를 결정할 큰 요인들은 이정도였다.

-돈

-시간

너무나 현실적인 요인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었지만 이 두 가지가 우선 순위였다. 자퇴를 한 1년쯤 후 저 생각을 할 때마다 다른 게 중점일 수는 없었나 안타까웠(안쓰러웠)다.

모순적이게도 이 두 가지는 자퇴를 해야 하는 이유에도, 그 반대에도 포함되었던 요인들이다. 4년간, 특강 때면 하루에 13시간씩 있던 미술학원과 재료비는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은 두 말할 것도 없으며. 미술을 그만둔다면 그 4년이라는 투자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한 학기를 더 다닐 자신은 없었다. 개강을 해 봤자 한 학기 등록금의 조금의 가치도 얻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또한 통학버스 왕복 3시간을 할 시간에 더 근사하게 내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미 방학 때부터 미술보다 취미에 쏟은 시간과 돈이 더 많았으니. 참 감정적이었고 자만스러웠고 나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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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엄마 아빠 앞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하자면,

안타깝게도 영화마냥 그때의 엄마가 해준 모든 말들이 기억나진 않는다. 여기서 엄마라고 집은 것은 아빠는 묵묵히 옆에서 둘의 대화를 경청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게 잘린 기억들은 몇 있다.


엄마는, 우리 멋진 엄마는 “그거는 엄마 아빠 돈이잖아. 엄마 아빠 돈이니깐 우리가(엄마 아빠가) 생각해야 될 문제이지. 그거를 네 고민거리 중 하나로 생각하지는 마. 한 학기 등록금을 더 내고 네가 그만한 수업을 못 들어도 그건 엄마 아빠 돈 문제지 봄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한 숨 고르고 “네가 자퇴를 한다고 해도 그 4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안 돼 봄아. 취미를 할 때나 아예 다른 일을 할 때도, 생각지도 못하게 그동안 배운 미술이 도움이 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이 다른 분야를 한다고 해서 절대 사라지지는 않아”


내가 해야될 고민과 그렇지 않은 고민을 잘 나누라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멋있는 사람이라 좋다. 그리고 중간중간 네가 아닌 봄아, 라고 불러주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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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브런치에 2020-2021 발행되었던 글들 '자퇴 사용경험서'는 인스타툰과 함께 차례대로 수정되어 재발행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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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주기적으로 #자퇴툰을,

가끔씩 #일상툰을 연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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