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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May 16. 2022

Ep 4. 소금이 많이 들어간 감자전

"밥은 먹었나?"


할머니집에 도착하면 듣게 되는 첫 마디다. 제 몸 하나 못 가눌 초등시절부터 2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그건 변함이 없다.

저 질문의 재미있는 점은 대답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는 점인데, 예를들어 먹고 왔다고 하면 그래도 밥을 방금 막 지었으니 조금만 먹어보라는 식이고 (조금의 기준이 나와 많이 다른 게 문제다.) 먹지 않았다고 하면 기다렸다는듯이 고봉밥을 가져온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요즘 시쳇말로 하면 '답정너' 같은 할머니의 질문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할머니의 주특기인 요리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감자전이었다.

요새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 전분물을 빼내 반죽하거나, 얇게 체를 썰어 부치는 방식이 많이 보인다. 그 위에 치즈까지 노릇하게 올려 그럴싸한 안주로 파는 곳도 종종 보았다.

그치만 할머니의 감자전은 그런 세련된 모양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잘 씻어 껍질을 벗긴 감자를 둥근 모양 그대로 얇게 툭툭- 썰어 소금,밀가루,물이 재료의 전부인 반죽을 묻힌다. 계량같은 건 필요없다. 소금도 적당히 물도 적당히 넉넉히. 이제 후라이팬에 넉넉히 기름을 두르고 바삭하게 부쳐낸다. 그러면 정겹다 못해 투박한 모양의 감자전이 완성된다.  

하지만 장담하는 데, 내가 느끼는 한 어떠한 감자전보다 맛이 좋다. 갈거나 체치지 않아 포슬한 감자의 식감이 그대로 느껴지고, 가끔 더 얇게 썰린 감자가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바삭 쫄깃해 아주 별미이다. 여기에 식초 약간 탄 간장까지 더하면 이건 뭐. 게임 끝이지.

밥을 먹고 오지 않은 날, 뭐 만들어줄까 하는 물음의 절반은 감자전이 차지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방법이 가장 흔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꽤 나중의 이야기이다. 세상의 감자전은 대부분 이건 줄 알았더라나.


하루는 문득 이 맛 좋은 감자전의 비법이 궁금해 할머니한테 가르쳐 달라하였고, 줄글로 적어도 두 줄이면 끝나는 이 레시피를 듣고 실망 아닌 실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누가 만들었냐가 비법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할머니집에 방문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집과 얼마나 가깝냐는 상관 없이 일상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기 바빴다. 어쩌다 방문할 일이 있어도 안부를 묻거나, 고장난 테레비(할머니는 꼭 이렇게 부른다.)를 손봐주거나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부쩍 바쁜 티를 내는 미운 손녀에게도 "밥이라도 먹고 가지" 그 말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시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렇게 바쁜 청춘이라는 핑계로  할머니집 방문은 점점 뒷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친척네가 할머니집에 왔다갔다고 했다. 부산에 사는 친척들은 가끔 이렇게 얼굴을 비치곤 한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던 친척동생과 통화를 하게 됐는데 그런 말을 했다.

"할머니가 닭조림이랑 감자전이랑 이것저것 잔뜩 해주셨어. 실컷 먹어서 배 터질 것 같아."  그리고 이어진 말은

"근데 있잖아, 이상하게 이번에 음식들이 다 엄청 짠거야. 나도 짜게 먹는 편인데도 짜서. 티 안내고 겨우 먹었네."

가족들에게 해주는 할머니의 메뉴는 고정되어 있다. 몇 년 넘게 해왔던 음식들의 간이 바뀌었다니.

간을 너무 많이 봐서 헷갈리셨나 의문이 들던 찰나 옆에서 통화를 듣던 엄마가 입을 떼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걸꺼라고. 혀에 감각이 많이 둔해졌을거라며.


언제까지고 맛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할머니의 음식도 맛이 변했다.

일년에 절반 이상은 할머니집에서 자곤 했던 나의 일상도 변했고,

그렇게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과 함께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거기에 담긴 사랑이고, 마음이고.

혹여 먼 미래에 할머니가 짠 감자전조차도 만들지 못하는 날이 와도 괜찮다. 그 어린시절 레시피를 배웠던 내가 있고, 할머니만큼의 맛을 내진 못하더라도 그럴듯할 정도로는 만들 수 있다. 그러고보니 만들더라도 내 입에 넣기 바빴던 것 같아 민망해진다. 글쎄, 할머니는 내 감자전을 맛있게 먹어주려나.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반 강제적으로 벌어졌다. 뉴스에서는 명절에 시골로 나려오지 않는 게 효(孝)라는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언제고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미뤄왔던 만남들은 그렇게 기약없는 만남이 되어 버렸다.

이번 주말엔 오랜만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려볼까 싶다. 시국이 많이 나아지면 오랜만에 얼굴 보러 가겠다고 해야지. 그 날은 고봉밥도 야무지게 먹고 올 것이다.소금이 많이 들어간 감자전을 기꺼이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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