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길어지고 푸른 하늘보다 먹먹하게 끼인 구룸의 풍경이 익숙해지는 이 맘 때 즈음이면 엄마는 잠자리를 옮긴다.
다른 화가 친구들이 으레 그러하듯 작은 월세방 하나를 작업실로 써 오던 엄마는 몇 번 위치를 옮기더니 언제부터인가 집 안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생 때에 이 집으로 이사 왔으니 적어도 10년은 된 일이다.
책장 하나를 빼곡히 채운 건 책이 아닌 아크릴 물감이고 서랍 안에는 형형색들의 털실들이 포개어져 있다.
엄마의 깔끔한 성격과 관계없이 세월이 만들어낸 묵은 자국들이 그 방엔 가득하다.
성인 남자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캔버스를 이리저리 돌려가다가 찍힌 바닥의 장판 자국, 그동안 써온 색을 알려주는 듯이 물들어있는 붓, 녹고 다시 굳기를 반복해 마치 촛농처럼 보이는 글루건 자국들,
민들레 홀씨처럼 몸에 붙어있다가 엄마를 따라 집안 곳곳에 흩뿌려져 가는 실오라기들.
그것들이 그렇다.
쌓인 캔버스의 나무 냄새가 풍기는 이 방은 여름이 되면 엄마의 침실로 변한다.
변한다는 표현이 무쌍하게 사람 한 명 정도가 누울 만큼의 공간만 확보해, 재료든 작품이든 훠이훠이 대충 치워두고 이불을 까는 게 다지만 말이다.
원래 자는 침실에는 에어컨이 없는 탓에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엄마는 그렇게 작업실에서 본인의 작품에 에워싸며 여름밤을 보낸다.
공간이 부족해 포개고 겹치고 쌓고 그러다 버리고 그리고 다시 새 작품을 만들고. 겹쳐진 캔버스 사이로는 20년이 넘는 화가의 세월이 고스란히 보인다.
'엄마 자?' 하고 문을 두들기고 들어가자 보인 작업실과 그 안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 자체로 하나의 캔버스 속 풍경 같다. 엄마가 아닌 화가로서의 당신.
그 방과 엄마에게서는 어렴풋 같은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