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단순히 달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달리기는 힘들면 달리지 않으면 됐다. 그러다 점차 언덕을 올라가거나 줄넘기를 넘는 일이 버거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제거되기 시작했다. 학교 계단을 올라가는 걸 못하더니 그 다음에는아파트 앞에서 헉헉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파트 현관에 놓인 계단은 고작 15개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 참담한 몸 상태를 실감했다. '아,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구나.'
시작은 계단에서 일어났다. 계단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서점을 갈 때도, 교실을 올라갈 때도 계단은 어느 장소에나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은연중에 몇 층을 올라가야 심장이 쿵쾅대는지, 몇 계단을 더 가야 눈앞이 핑도는지 알게 되었다. 항상 계단의 수를 생각했던 나는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하는 나를 마주하기 힘들었다. '어제는 스무 계단 올라가면 힘들었는데, 이제는 열 계단만 올라와도 힘드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어쩔 수 없이 열 다섯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1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계단을 오를 때 난간을 잡곤 했다. 어느 순간 나는 엄마와 아빠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느릿느릿하게 걸으면서 집으로 들어간 순간 '아 이건 진짜 아니다.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 가슴을 움켜쥐고 실의에 빠졌다.
행동반경이 줄어들자 나를 옥죄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나를 서서히 목을 조르는 느낌을 받았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천천히 늪에 빠져들어 곧 숨을 못 쉬게 되고 나락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터지는 지뢰밭처럼 곳곳에 지뢰가 숨겨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출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집 안에서 고립되어갔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우심방은 비상벨을 울려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숨을 억누르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아프다는 것을 표현하면 꼭 내가 지는 것 같아 양쪽 검지 손톱으로 엄지 손가락을 무차별적으로 찔렀다. 손 끝의 살은 손톱자국이 난무했고 꽉 깨문 입가는 붉은 핏방울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매 순간 내 심장의 압력이 지구의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까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방에서 거실로 걸어가는 것도 힘에 부친다. 심장이 쿵쾅쿵쾅거릴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왔다. 현실을 외면하려 텔레비젼이나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점점 다가오는 것 같은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민들레 꽃씨처럼 누군가 툭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날들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