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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Feb 07. 2021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우리는


   새 학기는 늘 설레고 두렵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다는 점에서 설레고, 나랑 잘 맞는 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떨지, 우리 반 아이들은 대체로 평범할지 아닐지 하는 걱정에 조금 두렵기도 하다. 공부에 대한 부담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반항의 아이콘 중2가 되었으니 세상 무서울 것이 뭐 있겠냐마는, 어쨌거나 새로운 시간들에 대한 걱정과 설렘은 당연한 것이리라.


  개학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어떤 과목 선생님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나에게 잔상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아마도 가정 또는 사회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날카로운 라인의 금테 안경을 쓰고, 단호하게 말려 올라간 단발머리 펌의 여선생님이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니 학기 초 중2병 걸린 파충류(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읽은 책에서 그렇게 말하더군. 사춘기 청소년은 인간이기보다 파충류에 가까우니 그들을 대함에 있어 너무 이성적으로 응대하다 뒷목 잡지 말라고.)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행동, 즉 기선제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거기 너, 누가 학교에 반지 끼고 오래. 빼!”     


  학기 초인 데다 한 반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빼곡히 앉아 있는지라, 아직 반 친구들의 이름과 생김을 낱낱이 알지 못했고, K 역시 선생님의 호명이 있고서야 비로소 나에게 인지된 아이였다. 풍성한 단발머리 머리를 한쪽 가르마로 넘겨 얼굴을 반쯤 가린 한 친구가 얼른 왼손 약지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한두 교시가 지난 후에 얼핏 보니 K는 다시 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오! 보기보다 곤조 있는데! 하고 관심을 갖고 보다 보니 K는 딱히 반항적이거나 고집스러운 성격은 아니었다. 그저 얼마 전 엄마가 사주신 예쁜 반지를 끼고 싶었을 뿐이고, 선생님이 지적질을 한다고 해서 크게 동요할 만큼 모범생이거나  간이 콩알만 해 질 정도로 소심하거나 하지 않는 정도의 평범한 사춘기 소녀였다. 나는 뭘 굳이 지적받을 행동을 해서 선생님들께 찍히고 그럴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고 실제로 그 선생님은 그해 내내 대체로 그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일 이후 난 우리 반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 보다. 어느새 그 아이와 친해져 버렸으니까.


  

  K는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자주 함께 하교를 했고, 언젠가부터는 내가 다니는 독서실에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작지 않은 눈을 가졌으나 웃으면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는 눈웃음이 예뻤고, 얼굴도 조막만 했다. 말투는 조곤조곤했고 손은 하얗고 예뻤던, 딱 여성여성한 스타일의 아이였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면 단무지는 자기가 훨씬 더 많이 먹으면서 더 달라고 할 때는 꼭 나한테 얘기를 한다. 처음엔 무심코 몇 번 대신해서 단무지 좀 더 달라고 말해주었는데, 어느 순간 뭐지? 싶어서 네가 해, 라고 했더니 자기는 부끄럽단다. 나랑 있을 때는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했으므로 뭐 하는 짓이야, 하면서 잘 안 받아줬는데 이제는 알겠다. 그 친구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던 거다. 낯을 가리는 사람은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앞에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그건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땐 그저 그게 내숭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뭐야, 같은 여자인데 내가 왜 보호해줘야 하는 거야? 하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나에 비해 키도 조금 작고, 얼굴도 조금 작고, 목소리도 조금 작은 그 아이를, 그러니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그 친구의 외모와 성격을 질투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나는 그때 이미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중이었고, 거기에선 그 친구 같은 타입이 남자들에게 좀 더 인기 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아직은 어린 사춘기 소녀의 입장에서 그런 점이 좀 부러웠었나 보다. 뭐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우리는 날이 갈수록 친해졌고 찰떡같이 붙어 다니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K의 집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독서실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중학생의 기준으로 볼 때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낮 시간에 걷기에 그다지 벅찬 거리도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공부보다는 나랑 함께 있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K는 굳이 우리 동네에 있는 독서실에 등록했다. 대신 집에 갈 때는 독서실에서 운행하는 차량을 이용했다. 나는 사실 집에서 독서실까지 거리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두 번만 엎어지면 닿을 거리였기 때문에 굳이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K가 온 날이면 일부러 함께 탄 적도 많았다. 그러면 독서실 아저씨(지금 생각해보면 오빠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젊었던, 아니 어렸던 독서실 사장님.)는 일부러 야경이 좋은 거리를 한 바퀴 빙 돌며 야간 드라이브를 시켜주곤 하셨다.



그때 우리는 듀스라는 댄스 가수들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멤버 둘을 비교했을 때 누가 더 멋있는지 선택하는 것이 불가할 정도로 전혀 매력이 달랐던 이현도와 김성재. 고백하건대 난 보통의 여성들과는 반대로 쌍꺼풀 있는 남자를 선호했고, 장동건이나 원빈이 짧은 헤어스타일로 변신 후 크게 주목받기 전부터, 말하자면 남들이 조금은 느끼하다고 여길 때부터 그들을 좋아했었다. 다시 말해서 듀스의 두 가수는 외모만 보면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미치도록 멋있었다. 무대 의상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의 스타일링을 스스로 한다던 멋쟁이 김성재, 그가 디자인한 옷을 혼자만 제대로 소화하고 자기가 입으면 영 멋이 안 나서 슬펐다던 이현도. 그러나 음악적 재능으로 보면 훨씬 섹시한 그였다.


  늦은 밤, 듀스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창문을 다 열어 놓은 후, 쌩쌩 달리는 봉고차 안에서 가능한 한 가장 큰 목소리로 노래 따라 부르기. 하루를 마감하는 데에 더없이 좋은 작지만 즐거운 이벤트였다. 지금 생각하면 큰일 날 일이다. 야밤의 과속도, 안전벨트도 메지 않고 앉아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노래를 불러대던 우리도. 그땐 그런 게 위험하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을 철없는 중딩이였으니까. (그럼 아저씨는? 역시나 철없는 20대 복학생이었으니까.)



  얼마지 않아 듀스의 2집이 곧 발매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주문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던 그때, 시내 곳곳에 있는 레코드점은 우리가 참새 방앗간처럼 신발이 닳도록 드나들던 곳이었다. 인기 있는 가수의 앨범이 새로 발매되면 득달같이 쫓아가야만 살 수 있었고, 때를 놓치면 애를 태우며 몇 날 며칠 기다려야만 한다. 이미 그것들을 득템하여 의기양양하게 카세트 플레이어에 담아가지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제발 나에게 그 이어폰의 한쪽을 잠시만 빌려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그런 상황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 면에 있어 태생이 느긋한 나는, 그까짓 거 조금 늦게 들으면 어떻고 내가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지 못하면 또 어떠하겠느냐는 마음으로 한발 늦게 음반 구매에 나서는 편이었지만, 듀스의 2집 앨범만큼은 꼭! 발매되자마자 들어보고 싶었다. 성격이 느긋하기로는 나 못지않은 K 역시 이번엔 적극 동의를 했고, 우리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시내 레코드점을 돌아다니면서 듀스 2집 구매에 열을 올렸다.


  시내 중심에 있던 단골상점엔 이미 품절.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보이는 레코드점이란 레코드점은 모두 뒤지고 다녔고, 적지 않은 시간 발품을 판 끝에 드디어 듀스 2집의 멋진 자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있든 말든 그 자리에서 꺄!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맨 뒷자리. 우리는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그 따끈따끈한 앨범을 개봉하는 거룩한 시간을 가졌다. 그 가슴 두근두근하던 시간의 공기와 냄새가 아직도 기억나는 것만 같다. 후텁지근한 실내 공기, 버스 특유의 냄새, 덜컹이는 뒷 자석의 불편함. 평소라면 이미 느꼈을 멀미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그때.



늑대 울음소리로 시작된 타이틀곡 ‘우리는’ 은
그 많은 명곡 중에서도
단연 귀가 번쩍 뜨이는 곡이었다.
나중에 TV를 통해 본 그들의 무대 영상 역시
말 그대로 감동의 도가니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때 나는 어렸고, 내가 듀스를 무척 좋아했으므로, 듀스는 그저 엄청 잘 나가던 힙합댄스그룹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때 당시에는 하도 쟁쟁한 가수들이 많아서 듀스의 명성에 비해 실제로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적은 많지 않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을 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하지만 훗날 후배 가수들과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레전드로 추앙받게 되었고, 2집과 3집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면서 그들의 위대함이 재조명되고 있다.



  또한 뉴트로가 유행인 요즘 방송에서 90년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듀스는 절대 빠지지 않는 그룹이다. 완성도와 세련됨에 있어 20여 년 전 음악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고, 그들의 댄스 역시 힙합 마니아들에게 힙합 댄스 교본이라 불릴 만큼 훌륭하다. 이현도와 김성재, 그 둘이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많은 팬들의 바람일 것이다. 새삼 김성재가 그리운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3학년이 되었고 반은 달랐으나 여전히 친하게 지냈다.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성적에 연연하며 고군분투하는 나날을 보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1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집 전화와 손 편지 외에는 통신수단이 전무했던 시절이라 방학 중에는 정말 가까운 거리에 사는 동네 친구가 아닌 이상 잘 만나지도, 연락도 안 하던 게 일반적이었고, 근대 기상 역사에 길이 남을 더운 여름을 보낸 후 개학날, 우리는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K는 머리스타일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풍성한 데다 곱슬기까지 있어서 그 작은 두상을 두 배는 커 보이게 했던 머리칼은 단정하게 땋아 묶은 채였다. 귀밑 3cm 단발머리가 규정이던 시절에 땋은 머리를 한다는 건, 예술을 전공할 예정이거나 곱슬이 너무 심해 도저히 단발이 불가하거나 딱 두 가지 이유 중에 하나이다. K는 곱슬이긴 해도 그간 무리 없이 단발머리로 살아왔으므로 짐작컨대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교실로 달려가다 복도 멀리에서 눈이 마주친 터라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응? 머리 뭐야? 하고 눈짓으로 물으니 씨익 눈웃음을 치고는 교실로 쏙 들어가 버린다.



  K는 무용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빠가 예술고등학교 무용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간간히 나도 발레나 할까? 라고 말해왔던 그녀였으므로 뭐 그렇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어쩐지 나는 조금 서운했다. 그 아이가 무용을 시작했다는 것은 앞으로의 진로가 나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가장 평범하고도 뻔한 인문계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고, K는 오빠가 다니는 예고 진학을 목표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무용을 시작한 이후 K가 독서실에 오는 날은 갈수록 뜸해졌고,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달려갔으므로 얼굴 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신체조건도 좋고 워낙에 유연했던 K는 별 무리 없이 예고에 진학했고, 나 역시 무탈하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나마도 K는 중간, 기말고사가 닥쳐오면 자기도 공부를 하긴 해야 한다며 독서실에 왔고 그때 겨우 우리는 그간 밀린 얘기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아이가 들려주는 예고 생활은 꼭 드라마에 나오는 얘기들 같았다. 문과 건 이과 건 간에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책과 씨름하는 것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K의 학교생활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또 3년이 흘러 우리는 수능을 치렀고, 원서 쓰느라 한참 바쁘던 시기에도 종종 만났다. 중학교 때 내가 목표로 했던 Y대는 이제 원서 한 장 버리는 셈 치지 않으면 써보지도 못할 높은 산이 되어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성적에 맞는 대학을 찾고 있던 나와 달리 K의 목표는 확실했다. 내가 꿈꾸던 그 Y대. 나 거기 갈 거야, 너도 와, 라고 K는 당차게 말했었고 난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년 내내 학교에, 독서실에 쳐 박혀 공부하느라 내 좋은 청소년기를 다 보내버렸는데, 그러고도 원하는 대학에 원서조차 쓰지 못할 상황인데, 중학교 때도 공부에 크게 집착이 없던 K는 뒤늦게 무용을 선택해 학교생활도 나보다 훨씬 재미있게 하고, 이제는 내가 꿈도 못 꿀 대학을 당당하게 가겠다고 하는 거다. 공부도 별로 안 했으면서!



  훗날 내가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 유난히도 날 탐탁지 않게 여기던 친구가 있었다. 나이는 동갑인데 내가 입사했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입사 5년 차, 상고 실습으로 나왔던 회사에 눌러앉은 것이다. 회사를 다닌 지 몇 년이나 된 그 친구보다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입사한 내가, 그것도 같은 여자인 내가 그 친구는 주는 것 없이 미웠을 것이다. 그때 같은 본부에 있던 선배 한분이 그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해줬다고 한다. 네가 5년간 돈 벌면서 일할 동안 그 친구는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공부를 하고 왔으니 그걸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인정해주라고. 지금부터 같이 출발하면 되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더 스스로를 반성한 건
아마 그 친구가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중학교 때 친구 K가 생각 나서다. 내가 공부를 하는 동안 그 아인 아무것도 안 한 게 절대 아니었을 텐데,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그저 노력의 내용과 방향이 달랐을 뿐 누가 더하고 덜했다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그땐 왜 하지 못했을까.


  아무리 태생이 유연하다 해도 이미 신체가 굳기 시작한 청소년기에 무용을 시작했으니, 어릴 때부터 하던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을 것이고,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느라 지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무용수에게 다이어트는 필수인지라 대부분의 저녁을 바나나와 요거트 등으로 때우는 것을 수없이 봐온 나였다. 그런 걸 다 보고도 그 친구가 별 노력도 없이 쉽게 대학을 간 거라 생각하고 억울해하다니......


  늦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너의 노력을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네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땐 K와 연락이 끊긴 지 이미 오래였다.



  K를 부러워하고 조금은 시기 질투한 것은 그저 내 마음속의 일이고 이후로도 우리는 좋은 친구로 지냈다. 다만 서로 학교생활에 바빠 고등학교 때보다 더 만나기 힘들었을 뿐 K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일 따위로 미워한다거나 멀어지기엔 난 그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날 K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그 아이는 다음 달이면 캐나다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가기 전에 한 번은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난 아마 그때 마음먹었던 것 같다. 이제 이 친구와는 끝이겠구나. 단지 멀리 떠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난 마음속으로 너무나 서운했다. 다음 달에 간다는 건 진즉부터 유학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왔다는 뜻일 텐데 그걸 이제야 말한다고? 가뜩이나 자주 만나지 못해 서운해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 친구에게 난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참으로 쪼잔하기 이를 데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그만큼 그 아이를 좋아했으니까, 라며 변명을 해 보게 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다녀오라 인사했고 따로이 연락처도 받아두지 않았다. 당연히 떠나는 순간 휴대폰 번호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이메일 주소라도 받아둘 걸 하는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친구찾기 사이트가 유행할 때도 함께 다니던 중학교 페이지에서 K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고, 이후 미니홈피, 페이스북 등등 각종 SNS가 유행할 때마다 그 친구의 이름을 검색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라도 유명한 무용수가 되어 있다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포털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해보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이름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모든 노력이 다 허사였다. K는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캐나다에 눌러앉아 버린 걸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오래전부터 이 지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레트로, 뉴트로가 사회 전반에 걸쳐 이슈화되고 있다. 추억팔이야말로 30, 40대를 사로잡기에 가장 쉬운 아이템이라는 것을 방송가에서도 알고, 우리 역시 그들의 노림수에 쉽게 넘어가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된다. 당연히 90년대 음악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고 그런 면에 있어 듀스의 스타성과 미스터리한 일화는 가장 좋은 이야깃거리 중에 하나다. 그런 이유로 요즘 유난히도 자주 각종 매체에서 듀스를 접하게 된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K 생각이 난다. 듀스의 음악을 가장 많이 함께 들었던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음반이 나올 때마다 함께 사서 듣고 함께 열광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실 휴게실에서 듀스의 춤을 추겠다고 허우적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속닥거렸던 시간들이 마음속에 여전히 소중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조금 서운한 마음이었다고, 하지만 떠나기 전에 날 만나러 온 것만으로도 넌 내 오랜 친구라고, 멀리 있어도 꼭 연락하라고 말하지 못한 나의 속좁음이 후회되기 때문일 것이다.


  K와 주고 받았던 교환일기장에 이런 말이 써 있다. "난 무용수가 될거고 넌 '아주 멋있는 콧대높은 아줌마' 또는 '자기 일을 열심히'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거야." 나는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너는 어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있어?



내 모든 인연을 통틀어 가장 만나고 싶으나
가장 만나 지지 않는 그 친구를
나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날 알아봐 주지 않을까.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걸 알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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