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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 Kim Oct 02. 2018

몬트리올, 그들이 계절을 축하하는 방식

<몬트리올 부엌 일기>

추운 겨울이 5~6개월간 지속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눈이 녹기 시작하는 봄부터 가을까지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겨우내 웅크렸던 어깨를 펴고 크고 작은 축제를 즐기느라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데,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 재즈 페스티벌, 서커스, 스탠드업 코미디 축제 등 꽤나 다양한 축제가 도시 곳곳 광장과 길목을 막고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시장과 공원 귀퉁이에서 열리는 비공식 축제, 파머스 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파머스 마켓에서 제철 농산물을 사고 농부에게서 ‘유기농 농산물 꾸러미'를 받아보는 일은, 몬트리올 사람들에게 계절을 축하하는 어쩌면 일종의 의식 같은 일 같기도 하다. 양파, 당근, 양배추 등의 저장 채소와 멕시코에서 건너온 수입 채소를 먹으며 긴 겨울을 견딘 모두에게, 근교 농장에서 재배된 생명력 가득 찬 신선한 농작물은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축복이다.


제철 유기농 꾸러미는 도시의 소비자와 농민들을 직접 연결하는 공동체 지원 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의 한 형태로, 소비자가 일 년 치 농산물의 가격을 미리 내고 수확철 동안 농산물 꾸러미를 받는 일종의 농산물 직거래이다. 농부는 판로 및 판매 시기를 놓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받고, 소비자는 서비스 비용을 받는 중간 상인이 없으니 저렴한 가격에 믿을 수 있는 유기농 상품을 살 수 있다. 배달 문화가 발달한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집에서 택배로 간편히 받아먹는 대신 여기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요일에 집 근처 픽업 포인트로 꾸러미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점이다.


농부들은 매주 정해진 요일에 도시 몇 곳의 공원, 놀이터 등으로 농산물을 가득 실은 트럭을 끌고 찾아오는데, 소비자들은 그 주에 생산된 수확물을 임의로 받는다. 사람들은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 준비해준 에코백, 비닐봉지 대용 캔버스 천 주머니 등에 그 주의 채소를 담아간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나이가 지긋한 커플, 젊은 싱글족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채소를 담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익숙하지 않은 농작물을 요리하는 방법에 대한 팁을 공유하곤 한다.


판매자 - 구매자라는 단순한 거래 관계의 프레임을 넘어서

이렇게 시민들은 생산 농장의 유기농 인증 정보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서, 생산자와 ‘관계’한다. 농부의 얼굴을 매주 만나 올해 흉작인 작물이나 짓궂은 날씨에 대한 푸념을 듣고, 함께 나온 농장 주인의 아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사람들이 판매자 - 구매자라는 단순한 거래 관계의 프레임을 넘어서 진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농업에서마저 영리를 최우선 하는 세태 속에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유기농, 친환경 등 많은 인증 수단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인증은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닐까?


내 가족에게 안전한 음식을 먹이겠다는 목표 너머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소비자의 먹을거리 선택은 농업, 환경,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거대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흙 한 톨 없이 깨끗이 세척되어 플라스틱 포장지에 포장된 파뿌리를 사는 대신에 근교 농장의 소농 유기농법으로 운영되는 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사용한 돈으로 어떠한 생산 방식을 지지할 것인지, 어떤 기업과 경제 형태에 표를 던질 것인지를 선택하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일상의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해 고민하며, 그것을 위해 때론 불편한 선택을 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한다. 농산물을 직거래로 나누는 이 파머스 마켓은 보다 더 윤리적인 방식으로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윤리적인 장터인 동시에, 부모와 아이들과 함께 올바른 먹거리 공부를 하는 교육의 현장이며, 모르고 지내던 이웃과 만나 얼굴을 익히는 동네 공동체가 움트는 공간이기도 하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고, 우리의 삶도 덩달아 바빠졌다. 재료를 장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요리 재료 배달 사업이 나날이 성장하고, 집밥 ‘스타일’을 주창하는 편의점 도시락, 반찬 전문점,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삶 ’식’ 생활의 대부분을 기업에게 위탁하는 문화가 더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이런 마당에, 식재료를 사려 깊게 선택하고 생산자와 만나 관계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장보기와 요리는 정말 삶에서 귀찮은 일, 시간을 아껴 다른 활동에 써야 하는 일일까? 먹고사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기술을 각자의 일상으로 들여놓는 일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그 근간과 다시 연결하는 일의 시작이지 않을까.


* 이 글은 월간잡지 샘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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