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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 Kim Sep 13. 2016

뉴욕, 뉴욕, 뉴욕!

맨해튼에 집을 구한 건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였다. 작년 뉴욕에서 보낸 6개월 간 내내 브루클린에서만 지냈기에 이번에는 빅애플의 심장이라는 맨해튼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외 테라스가 2개나 딸린 몬트리올 집의 2배가 넘는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까스로 입성할 수 있었던 맨해튼의 집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동반했다.


1. 주방에 접시가 없다. 

2. 주방에 뚜껑이 있는 냄비가 없다. (밥을 지을 수 없다)

3. 주방에 조리용 칼이 없다. (스테이크 써는 식사용 칼 하나가 전부)

4. 집에 창문이 없다. (아니지, 창문이 있는데 창문 밖에 벽이 있다!)


제일 먼저 집 근처 구세군(Salvation army)이 운영하는 구제 상점에 가 빈티지 접시를 사 오는 것으로 1번 문제를 해결했다. 밥이 그리울 때는 집 앞 차이니즈 테이크아웃 식당에서 밥을 사와 손에 잡히는 야채를 넣고 정체불명의 볶음밥을 만드는 것으로 2번과 3번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그리고 좁고 볕이 들지 않는 집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접시를 들고나가 빌딩 앞 계단에 앉아 볶음밥을 먹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민폐를 부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4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해튼에서의 생활은 자연스레 잦은 외식, 배달 음식, 테이크아웃 음식, 간단한 패스트푸드 샐러드 등으로 점철되었다. 


뉴욕에 8년째 살고 있는 나의 짝꿍은 우린 로컬들이 사는 방식대로 무척 잘하고 있는 거라며 애써 나를 격려했다. 7가지 '무료' 반찬이 나와 외국인을 감동시키는 순두부 전문 한국식당에서 김치 비지찌개를 먹고, 타이 북부 지방 요리 전문점에서 이싼(Isaan) 스타일 소시지와 솜땀(파파야 샐러드)을 먹고, 중국 시천(Sichuan) 국수 전문점에서 삼 분만에 말아 나오는 수타국수를 후루룩 들이키는 것...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일구어낸 전문 요리 식당들을 섭렵하고, 크로넛(cronut: 크루와상+도넛의 합성)이나 땅콩버터 맛 젤라또와 같은 뉴욕에서 창조된 신조 음식을 줄 서서 먹으러 다니는 생활. 그렇게 외식과 테이크 아웃, 그리고 테이크아웃한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 바로 그런 게 진짜 뉴요커의 생활이라고! 


*(초콜릿+고추 맛은 이제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치고) 와사비 맛, 오이+라임 맛, 흰 후추 맛, 아보카도 맛 등등 실험적인 맛으로 유명한 맨해튼의 유명한 젤라또 가게.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서 먹는다. 진득한 인내심 끝에 차례가 돌아면 저렇게 양팔을 높이 들고 기뻐하게 된다.


1.
10가구가 넘게 사는 그 빌딩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얼굴을 마주친 이웃은 한 명도 없었다. 


저녁 식사 때가 되어도 누군가가 야채를 볶거나, 고기 또는 생선을 굽는 냄새는 한 번도 나지 않았다. 단지 우편함 앞을 빽빽이 메웠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각종 택배들로 우리 말고도 누군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뉴욕의 그 많은 유행과 트렌드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키워드는 '지역 농산물', '유기농', '제철 음식', 등이었다. 원하는 토핑을 고르면 즉석에서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샐러드를 만들어주는 Sweet green이나 Chopt 같은 '건강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맥도널드에서 Chipotle(맥도널드보다 건강한 버전의 멕시칸 부리또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맥도널드 소유의 체인점)를 잇는 새로운 외식 트렌드가 되었고, 유기농 생과일/야채 주스바는 맨해튼에서도 땅값이 아주 비싼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 곳곳에 들어섰다. 각자의 철학을 자랑하는 소규모 식당들은 로컬 농장에서 직접 공수한, 때론 농부의 이름이 적힌 식재료로 맵시 있는 소스 장식을 한 접시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2.


맨해튼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무척 잘 먹었다. 아침에는 가볍게 유기농 생과일 야채 주스를 한잔 마셨고 점심에는 탄수화물과 비타민, 섬유질이 적절하게 조합된 신선한 샐러드를 종종 먹었다. 저녁에는 그 나라를 직접 여행할 때도 못 들어본 이국적인 식사를 하며 기분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잘 먹었을까? 거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이내 파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일상이 그리워졌다.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주방에서 채소를 씻고 껍질을 벗길 때, 곧 내 안에 들어가 내가 될 이 신비한 생명체들을 썰고 볶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삶과 닿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다. 


이런 도시에서 살면서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굉장한 헌신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 짝꿍은 미국의 메이저 유기농 슈퍼마켓 Whole Foods에서 파는 유기농 재료의 사악한 가격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가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분노를 터뜨린다. 그렇다면 좀 더 윤리적인 방식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일조하며 저렴하게 정직한 유기농 농산물을 살 수 있는 방법, 근교 농장의 농부와 일 년 계약을 맺고 제철에 나오는 농작물 꾸러미를 받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부러 대형 슈퍼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pick-up 포인트에 정해진 요일 찾아가 야채 바구니를 받아오라고 하는 것은 과연 모두에게 현실적인 요구일까? 짝꿍을 통해 알게 된 많은 뉴욕 사람들은 보통 긴 시간을 노동해 시간이 없거나, 또는 긴 시간을 노동하기를 거부하고 자유를 선택하여 주머니 사정이 가볍다.


이쯤 되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곧 다시 짐을 싸서 떠난다. 주방이 지금 사는 곳의 두 배쯤 되고, 아직 덜 관광지화 되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지 않은 파머스 마켓이 집 5분 거리에 있는 브루클린으로.



* 직접 찍지 않은 사진들의 출처: 

1. http://images.nymag.com/images/2/daily/2010/03/20100304_gelato_560x375.jpg

2. http://static5.businessinsider.com/image/546ca546ecad045f46f5f125-1200/sweetgree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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