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무모했던 데뷔여

뭘 몰라서 용감했던 막내작가, 굿바이 부산

by 코고아모

[입봉 = 어떤 분야에서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연출자나 작품을 쓴 작가, 그들의 작품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


'입봉 작가' 방송계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쓰는 말인데 '입봉'이 일본식 단어라는 걸 이번에 글을 쓰면서 알았다. 자매품 '쌈마이'(3류) '니마이'(주연) 등이 있겠다. 방송계가 워낙 외래어나 일본식 은어가 많긴 한데, 몰랐을 땐 막 썼지만 알았으니 조금 덜 써볼까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선 '데뷔'라고 칭해본다.


일반 회사라면 자신의 이름을 건 첫 기획물일까? 보통 작가의 데뷔작 기준은 자신이 아이템을 찾고 초안을 쓰고 수정고를 해냈을 때, 그 대본을 온전히 책임지고 마무리했을 때를 말한다. 물론 순간순간 선배 작가들의 도움이 있다.(많다) 부산에서 나의 방송작가 데뷔의 기회는 상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게 좀 생각보다 빨라서 당황스러웠달까.


때는 내가 막내작가가 되고 1년이 채 안 됐을 때였다. 팀을 바꾸고 막 경찰서 취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프로그램 특성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범죄, 수사 재연물'이다 보니 취재의 대상은 늘 경찰 아니면 형사였다. 주로 형사님들을 취재했는데 처음에 덜덜 덜덜 떨어져 질문 하나 제대로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자고로 막내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 덕목이란 '취재'이거늘,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왜 적어서 질문하는데도 빠뜨리는 질문은 그렇게 많았을까. 그럴 때 나는 또다시 내면의 동굴로 들어가서 무릎을 껴안고 말한다. '나 작가 하면 안 되나' 그렇게 며칠 자괴감에 빠졌다가 이대로는 안되지 싶어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 '레이더를 뽑아라' 귀를 열고 촉각을 세워서 선배들을 보고 모방해야 한다. 해봤는데 그게 가장 빨리 일이 는다. 그래서 선배들이 형사들과 어떻게 전화하는지 듣고 받아 적었다. 어린아이처럼, 인터뷰를 할 때 어떻게 말을 하는지, 어떤 걸 물어보는지, 어느 정도의 톤으로 하는지, 어떻게 리액션하는지 까지 싹 다 적었다. 그렇게 적은 걸 통화할 때마다 하나씩 적용했다. 처음엔 딱딱하기 그지없었던 말투를 조금 유하게 바꾸는 것부터 했다. "형사님~" 하며 약간의 웃음을 담아서 친근한 척 입을 뗐다. 뭐 그렇게까지?라고 할 수 있지만 필요하다.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적어도 내가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표시를 목소리에라도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몇 번의 취재를 했고, 취재한 걸로 선배들이 대본을 쓰고, 방송이 착착 진행됐다. 나는 소품을 만들고 배우들을 관리하고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고, 해가 바뀌었다. 그리고 2010년 2월의 어느 날, 내가 아이템 하나가 배정되었다. 그때가 설날 언저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선배들과 피디님들이 아이템 하나를 써보라고 했다. 또 그땐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40분짜리 대본을 글도 안 써본 애한테 맡긴다는 게 엄청난 일이었다. 그때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보도자료' 뿐이었다. (이건 방송마다 다르지만 여러분이 보는 미리 보기, 그리고 보도자료는 대부분 막내작가들이 쓴다. 그게 막내'작가'로의 첫걸음이다.) 10줄이 안되던 글도 몇 번을 고치면서 쓰는데 40분 재연드라마 대본이라니. 그런데 겁도 없었지, 덜컥 쓰겠다고 했다.


원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무식해서 용감한 댔다. 대본을 쓴다는 것의 무게를 몰라서 용감했다...

여러분은 신입 때 이불 킥하고 싶은 사연 있는가? 난 이때다. 작가인생 통틀어 이때 기억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첫 대본, 아이템은 '트랜스젠더 살인사건'이었다. 여자친구가 트랜스젠더인 걸 알고 죽인 끔찍하고 씁쓸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아이템이 정해지면 재연드라마 대본은 어떻게 쓰는가. 드라마 대본과 비슷하다. 아이템 결정 -> 취재 -> 구성. 트리트먼트 -> 초고 -> 수정본 -> 완성본 이 순서로 대본화가 진행된다. 그래도 몇 개월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아이템을 받고 취재하고, 기사를 찾아보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트리트먼트. 보는 것과 쓰는 것이 천지차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보통 대본을 쭉~쓰진 않는다. 흥미롭게 구성을 한다. 특히 도입이 관건이다. 첫 몇 분 동안 어떤 장면으로 시청자에게 보게 만들 것인가. 그걸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라곤 막. 막 두 글자뿐.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거다. 그렇다고 주야장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시간도 없다. 방송은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프로그램을 틀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3일 안에 트리트먼트를 써야 했다. 어쩌겠는가, 밤을 새웠다. 밤을 새우고 적어간 건 몽땅 뒤집어 엎었다. 선배들은 밋밋하고 평이하기 그지없었던 내 대본을 이건 아니라며 조언을 해주었다. 결론은 다 뜯어고치라는 것.


그렇게 몇 번의 수정 끝에 내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너덜너덜해진 트리트먼트로 이번엔 대본을 쓰는데... 또 그놈의 자신감이 불쑥 나왔다. 술술 쓸 줄 알았다. 학교에서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써보기도 했고 교수님께 후한 점수를 받은 터라 자만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한 신을 써 놓고, 그다음 씬의 대사를 쓰지를 못 하겠는 거다. 진짜 울면서 썼다. 머릿속에 구성 뼈대가 딱 잡혀 있어서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도록 해야 하는데.. 구성만 있었다. 좌절의 연속.... 나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마치 백지를 내는 심정으로 대본을 선배들에게 내보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보다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것 아닌가. 물론 선배들이 봐준 트리트먼트대로 썼으니 흐름의 이상은 없을만했다. 선배들은 대사를 볼 때 캐릭터가 다 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지적만 했다. 말투를 조금씩만 고쳐 보라고. 너무 부끄러운 지적이었다. 남, 여, 경찰, 범죄자, 등등 캐릭터성을 단 하나도 녹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도깨비 대본에 은탁이, 저승이, 김신 말투를 다 똑같이 적어놓은 거랄까. 그런데 그땐 그저 수정이 별로 없구나, 다행이네라고만 생각했다. (대체 왜!!!!) 심지어 '생각보다' 잘 썼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한껏 업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잘하나 봐'라는 생각에 머릿속에 기쁨 이만 뛰어다니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업된 기분으로 난 어느 때 보다 열심히 내 대본의 촬영을 준비했다. 그 뒤는 별일 없었다. 베테랑 피디님은 내 대본을 막내 입봉작이라고 열심히 찍겠노라고 해주셨다. (감사할 따름)


모든 것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 상황.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아, 이런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는다. 보통 방송이 나가기 전, 스크롤을 정리하는데 방송 전날, 피디님이 내게 '언니들에게 스크롤 어떻게 넣을 건지 물어봐'라고 했다. 그 말인 즉, 내 이름을 작가 부분에 넣을 건지 자료조사로 넣을 건지를 정리하라는 말이었다 (라는 걸 난 몇 년이 지난 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작가님들에게 가서 대뜸 한 말은... 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을까.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배를 보며 물었다.


"피디님이 스크롤 정리하라는데요... 제 이름만 넣으면 되나요?"


그때 작가님의 그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을 나는 왜 눈치채지 못했나. (회귀할 수 있다면 저 입을 다물라고 하고 싶다) 이게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대본을 쓰기까지 수정해 주고 지도해 준 작가님들은 스크롤에서 빠지세요'라는 말이었던 거다. 작가들은 그만두지 않는 이상 스크롤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의 팀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모두 이름을 올린다. 그런데 나는 선임을 스크롤에서 지우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것이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도 서늘하다. 작가님은 정말 뭣도 모르는 나에게 "피디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라고 정말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그건 아닌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때 작가님은 "선배들 이름 넣고 맨 마지막에 너 이름 넣으면 되겠다"라고 정리했다. 알겠다고 하고 전달하러 가며 나는 '왜지'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해서 다행이다. 뱉지 않아서 다행이다. - 작가님 잘 지내고 계실까? -


그렇게 준비한 방송작가 데뷔작이 2월 말, 전파를 탔다. 저걸 내가 썼다고? 실감이 안 나던 내가 쓴 (마무리한) 대본, 내 첫 방송. 꽤 최근에 유튜브에 그 영상이 올라와 있는 걸 발견하고 다시 보게 됐다. 그때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 데뷔작의 팔 할, 아니 구 할은 선배들과 피디님 덕이다.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그들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저 서울에 가서 작가 하려고요"


대본을 쓰면서, 서울에 가서 작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방송이 될 무렵 확고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2개월 후, KNN을 나와 상경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다들 인생에서 해본 가장 무모한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난 2011년 그때가 내 인생에 손꼽을 만큼 무모했고 거침없었 시절이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스물일곱의 그해.

서울 살이가 어떤지 미리 알았으면 나는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서울 방송국이 그렇게나 버라이어티 한 줄 알았다면 난 온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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