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꿈들이 방울방울 생겼다

재밌어서 큰일(?)이었던 그때 그 시절

by 코고아모

오늘의 이야기 : 다큐팀 화려한 피날레, 그리고 다음은 범죄물?


신입 시절 생각나요? 가장 황당했던 일이나 기억에 콕 박힌 일이 있나요?

전 있어요. '상'을 받은 기억 그리고 '피'를 만들었던 기억이죠.



막내작가로 적응의 한 달을 보내고.. 이후 다큐팀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10부작 낙동강 다큐멘터리, 태백에서부터 흘러온 지류가 어떻게 낙동강으로 모이는지를 담는 프로젝트였다. 말도 쉽지 않고 상상도 잘 안되고 직접 찍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어마어마한 정성과 수고가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들은 어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그것을 해냈던 걸까.


당시 피디님들은 늘 등산복 차림에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방송국을 다니다가 전국의 산으로 출동했던 기억이 난다. '산' 이야기하니까 기억나는 일이 있다. 재밌는 게, 당시 그들이 올라야 했던 산은 전국의 푸르른 산과 더불어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파이널컷' 편집 프로그램이다. 2009년-10년 즈음, 촬영 저장 방식과 편집 프로그램이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디들에겐 '비상'이었다.


방송국 한 벽면에 이 편집기가 쭉~ 늘어서 있었다..

원래 방송국에서 쓰던 건 왼쪽과 같은 편집기였다.

일대 일 편집기라고 혹시 알까? 이번에 알았는데 'HD 레코더 편집기'라고 부르는 기계다. 여기에 아래와 같은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편집을 했었다. (요즘도 쓰고 있는 곳이 있다고 알고 있다.)


기계 오른쪽 하단의 조그를 돌려서 앞으로 뒤로 돌리고 탁-! 누르면 멈추고 이랬던 (것으로 기억) 편집기라 손맛이 상당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나도 한두 번 해봤는데 드르르륵- 드륵- 탁! 탁! 하는 게 뭔가 막 방송하는 사람 같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 추억이다.. (아직 집에 많음)

하지만 손맛의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장비들이 디지털화되면서 모든 방송국에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 폭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방송국 1층에 편집실이 하나 꾸려지고 아이맥이 몇 대 쭉 놓였다. 피디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대체 이 물건은 어떻게 쓰는 건데' 라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다큐팀 피디님들은 당장 그걸로 편집을 해야 하는 상황! 셋 중 가장 어린 피디님이 (사실 그도 어려웠을 텐데) 후다닥 배워서 선배 피디님들의 컷 편집을 도왔다. 키 하나를 누르는 데 '맞나, 아니가' 오만 고민을 다하던 피디님들... (우리가 AI 배우는 게 게 꼭 저럴까 싶고.) 그들은 자연과도 싸웠고, 신문명과도 싸워야 했다.


그럼 작가팀은 무엇을 했는가. 촬영 테이프를 모두 확인한다. 막내인 나는 그걸 받아친다. '프리뷰'라고 하지. 몇 초, 몇 분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다 받아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0002 # 해가 떠오르는 지리산] 이런 식이다. 1시간 영상 프리뷰하는데 대략 4시간. 테이프는.. 10개가 훌쩍 넘는다. 그때 난 프리뷰를 하며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했을까? '프리뷰 해주는 기계가 나왔으면 소원이 없겠다'였다. 그림은 아름다웠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과 강, 푸르른 자연,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상미가 넘쳐났지만 아름다운 것도 잠깐이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 자연도 그만 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암튼 그렇게 프리뷰를 해댔으니 먼 훗날, 네이버 클로바노트 나왔을 때 난 기분이 묘했다. 조금만 일찍 나오지.

그렇게 프리뷰를 하면 작가님들은 그걸 보고 구성을 한다. 피디님과 작가님은 함께 어떤 그림에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이야기한다. 그림을 이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 한 컷 한 컷 잘라 붙여서 큰 그림을 만든다. 그 과정을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조각보 같다는 생각을 한다. 따로 노는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서 수려한 보자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한 편 두 편, 다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4개월 후, 방송이 나갔다. 낙동강 지류 대탐사 10부작. 편집본으로 본 것과 본편은 완전히 달랐다. 음악이 들어가고 영상의 톤을 일정하게 맞추고, 효과를 넣고, 자막을 넣은 후 보니 새삼 와-작게 탄성이 나왔다. 촬영하고 글을 쓰는 노고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영상에 조금은 보탬이 되었구나하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두근두근 기대되는 것도 있었다. 참여한 첫 방송이 나갈 때 가장 기대되는 건? 프로그램의 맨 끝, '스크롤'이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프로그램 본내용이 끝나고 빠르게 흘러가는 스크롤 속에 선명한 내 이름, '자료조사 OOO' 아, 스크롤 데뷔했다. 막내작가로 불렸지만 글 한 줄 쓰지 않았으니 자료조사였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그때 작은 목표가 하나 생겼다. 자료조사로 이름이 나갔으니 다음은 작가로 나가야지!

(난 막내들 스크롤 사진을 꼭 찍어주곤 하는데, 내 것도 찍어 놓을 걸. 좀 아쉽다.)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작가로 상 받고 싶다'였다. 뜬금없이 웬 상? 이유가 있었다. 당시 다큐가 한국방송대상에서 지역 다큐멘터리 TV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던 거다. - 한국방송대상은 우수한 프로그램과 방송인에게 상을 수여하는 지상파 통합 시상식이다 - 처음으로 간 시상식에서 단상에 올라 상을 받는 피디님, 뿌듯해하는 작가님들을 보니까 '와 나도 작가로 상 받고 싶다'라는 마음이 절로 드는 거다. 수상대에 올라가면 어떤 기분일까? 괜스레 상상하며 배시시 웃었다. 무엇보다 그 마음이 확고해진 건, 피디님 덕이다. 팀장피디님이 상금으로 피디, 작가 모두에게 트로피를 만들어서 준 것이다. 상상도 못 한 선물에 너무 벅차고 기분이 좋았다. 네모난 은색 트로피를 보는데 트로피가 날 보고 웃었다 '어서 와, 방송은 처음이지 :) ' 생뚱맞게 '나도 팀원이 맞구나' 라는 벅참과 동시에 작가로 또 받고 싶다는 생각이 훅- 커진 것이다. 그 트로피는 아직 우리 집 거실에 있다. 나는 물론이고 엄마 아빠의 소중한 보물이다. 아, 두 번째 트로피를 세워놓고 싶은데.. 될까?


그렇게 다큐팀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짧고 굵은 다큐팀 인턴 생활이 끝났다. 학교로 돌아갈 것인가, 일을 할 것인가, 하지만 쿨하게 떠나기엔 첫 정이 너무 셌다. 그 방송의 첫인상이 너무 셌다. 돌아가기엔 마음을 너무 빼앗겨 버렸다. 난 학생으로 돌아갈 생각이 1도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다음 팀으로 옮겨갔다. 학교엔 취업계를 제출했다. 방송국에 남은 나는 두번째 팀으로 갔다. 이번엔 '범죄, 수사 재연드라마'이다. 다큐와는 180도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다큐팀 막내가 정적이라면 재연팀 막내는 동적이었다. 전화 취재, 배우 캐스팅, 스케쥴 챙기기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새로웠던 건 촬영 소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재연프로그램의 소품은 사는 것, 방송국 소품실에서 갖고 오는 것, 아니면 죄다 조연출과 막내작가가 만든다.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조연출과 머리를 싸매고 만들었던 '피'다. 촬영 며칠 전만 되면 우리는 물엿 수십 통과 빨간 색소를 사왔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피 만들기에 돌입한다. 붉지만 너무 붉진 않은, 너무 끈적이지 않게, 농도도 알맞게, 카메라에 잘 담기에 만들어야 했으니... 이걸 무작정 섞는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조금씩 정성스럽게 물엿에 색소를 조금씩 타고 저어보고 빛 아래 들어서 색을 보고.. 실험실 조교들같다고 깔깔 웃다가 나름 진지하게 만들었었다. 사실 후딱 만들고 치우면 될 일을 우리들은 왜 그렇게 진심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때 함께 일한 사람들 유독 그랬다. 일을 할 때 항상 타올랐고 반짝였고 진심이었다. 말로는 힘들다, 피곤하다, 하기 싫다 하면서도, 피디님들은 좋은 그림이 있다고 하면 벌떡 일어나 총알보다 빠르게 달려 나갔고, 작가님들은 아이 키우느라,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몸이 세 개여도 모자라는 순간에도 두 눈을 반짝이며 모니터를 보고 글을 써 내려갔다. 굳이 없어도 되는 소품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뛴 조연출들도 있었다. 대충 하는 것 같으면서도 많은 피디 작가들에게선 자신의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시청자에게 보이겠다는 책임감과 열정이 가득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신나게 놀 땐 놀고, 일할 때도 신나게 일했다.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이구나 싶게, 좋아서 책임감 있게 해내고 싶구나 싶게 열심히들 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인상적이었나보다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방송을 그렇게 재밌게 배웠다.


원체 나는 분위기에 잘 감염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때 유독 힘들어도 힘들지가 않았다. 열정 뿜뿡 사람들 사이에선 흐리멍덩하게 살 수가 없다. 난 점점 하나라도 내 프로그램에 득이 되는 걸 더 제대로 하고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글이글 타올라갔다. 그 시절이 내게 가르쳐 준 정말 큰 한가지는, 좋아하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열정과 에너지는 잔잔히 번지고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스며든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를 붙잡고 너는 왜 열정이 있니 없니 잡도리하거나 뒷담할 게 아니라! 각자가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하면 거대한 좋은 기운이 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이 잦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나의 기운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겠지 생각하면서 허리를 세우고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다. 나름 반짝여보려고 눈을 떴는데, 반짝였으려나 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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