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혼자 살아라...
나의 3번째 남자 친구는 이기적인 남자였다. '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겠다는 기준을 세우고 나서 처음 사귄 남자 친구였다. 그는 나보다 6살 많았었는데, 만날 당시 나는 대학생, 그는 직장인이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는 그간의 학생 남자 친구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보다 경험이 많기에 배울 점이 많았고, 평일엔 양복을 입고 만나니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색다름에 나도 끌렸고, 그도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사귄 지 3일째 되는 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너랑 결혼하고 싶어"라고. 연애를 하다 보면 서로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고, 연애 3일 차에 하는 사랑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나도 말했다. "그러게요!"
그는 매주 수요일, 퇴근하면 내가 있는 쪽으로 저녁을 먹으러 왔고, 토요일엔 외부 데이트를 즐겼었다. 항상 별다른 말이 없으면 수, 토에 만났었다. 연애 초반 워낙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어른스러움에 매료되어 초기 1달은 아무런 문제 없이 순탄하게 지나갔다.
문제는 내가 본격적으로 취준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소개팅 당시,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금융공기업 취직과 로스쿨 진학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다음 해에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공기업에 재직 중이던 남자 친구는 나에게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금융 공기업을 추천해주며, 여기에 빨리 취직해서 본인과 결혼하자고 했다. 나는 사귄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이기도 하고, 아직 학생 신분이기에 장난스럽게 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일찍 준비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취업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도서관에 처박혀서 공부를 하다 보니 토요일 데이트는 나에게 유일한 휴식시간과 같았다. 그렇기에,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었고, 오히려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어서 너무 좋았었다. 문제는 중간고사 시기가 한창일 무렵,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나는 남자 친구에게 학교 내에 있는 나름 고급식당에 가자고 제안했다.(그는 나와 동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네가 학교 밖으로 나와, 내가 토요일에 여기까지 와줬는데, 나보고 학교에 들어가라고? 이기적인 거 아니냐?"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에 나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었다. 지하철역에서 학교 들어오는 거 20분이면 되는데, 와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실랑이를 하다 결국 남자 친구가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 식사를 하고 마무리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토요일에 데이트 못하고 학교에 들어오라는 게, 직장인이 되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구나...(직장인 되어보니 어려운 것도 아니구만...)
그의 이기적인 행동은 사귄 지 1달이 지나고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상황들이 있었지만 몇 가지 상황으로 그의 자기중심적 생각을 읽어볼 수 있다.
<상황 1>
남자 친구도 금융공기업에 재직 중이었기에, 나는 그가 다니던 회사에도 서류를 제출하려고 했다. 연애 초기 그가 나에게. 취준 시작할 것을 권하면서, 시작하게 되면 본인이 했던 모든 자료로 도와주겠다고 먼저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이 생각나서 그의 출근 시간에 맞춰 전화통화를 하며 자기소개서를 정중하게(?) 요청했다.
나 : 오빠가 다니는 회사 서류전형 열렸던데, 저도 써보려고요! 혹시 작년에 썼던 자기소개서.. 저번에 보여준다고 말했었는데, 보여줄 수 있어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남친 : (한숨을 크게 쉬며) 아니.. 하..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이런 걸 말해. 출근하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 들어야겠어?
나 : (황당하지만...) 아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남친 : 그냥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 벙찐 상태에서 며칠이 지나고 그의 입에선 자기소개서 이야기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기소개서는 내가 알아서 작성했고, 서류제출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나 : 오빠 미안한데요, 제출일이 얼마 안 남아서요.. 혹시 오빠가 작성했던 자기소개서 이제 보여줄 수 있어요..? 그게 어려우면 내 것 한번 첨삭이라도 도와줄 수 있어요?
남친 : 아 내가 자기소개서를 다시 봤는데, 어차피 너하고는 상황이 너무 달라서, 읽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따로 말 안 하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알아서 잘 썼겠지. 첨삭해봤자 별로 도움도 안 돼.
결국 그는 절대 안 봐줬고, 내 힘으로! 도움 하나도 안 받고! 서류 제출해서 당당하게 서류 통과를 했다.
<상황 2>
서류통과 후, 필기시험까지 운 좋게 모두 통과하여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면접은 혼자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 학교 내 면접 스터디를 구해서 준비를 하게 되었다. 면접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남아서 매일 스터디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토요일 데이트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목요일에 전화로 미리 양해를 구했다.
나 : 오빠 미안한데.. 스터디 일정이 매일 잡히게 되어서요ㅜ 이번 주 토요일 데이트만 일요일로 바꾸는 거 어때요? 일요일은 오후에 끝나서 저녁식사 가능할 것 같아요!
남친 : 너는 나하고의 약속은 안 중요하니? 갑자기 맘대로 바꾸면 어떡해, 나도 나의 계획이 있는 건데. 너 정말 이기적이다.
나 :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이없어서..) 아니.. 우리가 토요일에 데이트를 평소에 하긴 했는데, 명확히 말하면 이번 주에도 토요일에 만나기로 정했던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어떻게 이게 이기적인 거예요?
남친 : 하.. 무튼 나는 토요일 저녁아니면 시간 안되니까 그냥 이번 주에 보지 말던가.
결국 나는 토요일 스터디를 째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아니!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이럴 수 있는 남자 친구가 또 있단 말인가.. 진짜 이때 왜 갔는지, 과거의 나에게도 화가 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저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당당히 회사에 합격했다.
<상황 3>
취준을 하며 회사 2곳에 합격하게 되었다. 한 곳은 남자 친구가 다니는 곳, 다른 한 곳은 남자 친구가 알려준 금융 공기업이었다, 그리고 나는 후자를 가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 선택을 내릴 당시, 남자 친구는 고려대상에 없었고, 두 회사를 비교하였을 때, 덜 보수적인 회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1달 간의 연수를 받던 중, 남자 친구가 1년 전부터 결혼 준비를 해야 하니, 웨딩홀 예약하러 가자고 말했다. 이 당시 전화 통화를 하며 본격적으로 논쟁을 하게 되었다.
남친 : 이제 취업도 했고, 지금 준비 시작하면 1년 정도 걸리니까 웨딩홀 예약하러 가자.
나 : 네..? 저 이제 막 연수받고 있는데요? 너무 급작스러운데..
남친 : 그니까, 준비 1년 정도 하면 되니까 예약하러 가자고.
나 : 아니 내가 지금 23살이고, 오빠가 29살인데, 결혼을 당장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아요. 나는 적어도 27살은 돼서 결혼하고 싶어요.
남친 : 이건 말이 다르잖아. 취업하면 바로 결혼하겠다며, 나는 30살에 결혼하는 게 목표야.
나 : 근데 30살 결혼이 중요한 거예요? 누구랑 결혼하느냐가 아니라? 정말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라면 몇 년 더 연애하다가 결혼해도 되는 거잖아요.
남친 : 그런 거라면 너도 나랑 하고 싶은 거라면 27살이나 24살이나 그게 그거인 거잖아. 나는 절대 31살은 못 넘겨. 네가 그걸 못 맞춘다면 결혼하는 여자가 꼭 너일 필요는 없어.
와.. 저 마지막 말에 결국 전화 끊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정말.. 함께 연애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자기가 그린 그림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던 것이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결혼은 또 다른 시작이긴 하지만 나는 항상 연애의 종착지는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20살부터 남자 친구를 만나면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항상 품으며 연애했다. 결혼을 안 할 사람이라면 언젠가 헤어질 거라는 의미인데, 끝이 있는 연애라면 유지하는 것이 시간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기적인 남자는 정말 걸러야 할 남자 1순위다.
연애할 당시에는 이기적이라고 해도 데이트 당시 잠깐 동안은 잘 느껴지지 않을 수 도 있고, 크게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집안일도 모두 나눠서 해야 하고,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인데, 한 사람이 본인만 생각하면 다른 한 사람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는 시점부터 아마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사는 맞으나, 각자의 가족과 돈이 연계되어있기도 하다. 나의 6살 많았던 전 남자 친구는 나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며, 본인 집에서 3억을 해줄 거라고, "너희 집에서 그만한 돈을 못해올 거면 우리 엄마가 너를 맘대로 해도 너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돼."라고 나에게 말했었다. 이런 사고방식의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이기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연인 간에는 한쪽에서 베풀면, 다른 쪽에서 고마음에 또 베푸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기심에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정상적인 연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이기심에 고통받고,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자기만 생각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참고 살기엔 너무 내 마음고생이 크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