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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n 18. 2017

11. 심심할 때 발리에서 하는 것들

이러려고 발리 왔나, 심심하고 즐거워

11-1. 조금만 길게 여행을 하면 어느 순간 심심해진다. 발리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늘처럼, 서핑 후유증으로 서핑도 하지 않는 날엔 정말 심심해서 죽을 것 같다. 관광지란 관광지는 다 돌았고, 원숭이나 사원이나 사람들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 때,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심심함을 좋아한다. 비로소 발리에 적응하기 시작했구나, 느끼기 때문이다.

11-2. 이런 심심함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먹고, 쓰고, 자고, 그리기. 식재료를 사다가 이것저것 요리를 만들어보고, 지금처럼 글을 쓰고, 늘어지게 잠을 자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그린다.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나면 가장 남는 것이 이 심심한 순간들이니까.

11-3. 이번 발리 여행에서 심심함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벌써 발리에 온 지 4주가 흘렀다. 그래서 그림이 몇 개 없다.

11-4. 

이 그림은 덴파사르에서 탄생했다. 발리도 현대화가 많이 돼서 전통가옥이 별로 없다. 사원 같은 곳에서 옛날 냄새를 듬뿍 맡을 수 있는데 이렇게 생겼다. 나는 이 지붕들 볼 때마다 80년대 우리나라 여학생들의 단발머리가 생각나던데, 정말 칼같이 잘라놓았다. 그 위로 보이는 저 검은 얼룩은 연이다. 발리에선 서핑도 서핑이지만, 그렇게들 연을 날린다. 연 페스티벌도 있다던데. 가끔 애들이 자기 몸보다 큰 연을 날리고 있다. 

11-5. 다음은 우붓이다.

사실 우붓 뜨갈랄랑에 대해선 별로 기대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논농사 지대고, 논이라면 어릴 때부터 주구장창 뛰놀던 공간이니까. 내가 혼자 자주 가는 남해 다랭이마을의 큰 버전이라길래, 더욱 그랬다. 그런데 확실히 엄청난 크기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곳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그랬고, 그 모든 계단식 논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수로가 놀라웠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방식.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내가 제일 못 그리는 그림 중 하나가 자연이다. 도무지 질서를 알 수 없는 곡선과 직선의 배합을 담아낼 수 없다. 참고하고 그림을 보라.

11-6. 내가 서핑하는 꾸따 해변이다. 

비치워크 쇼핑몰에서 자라 앞 입구로 들어가면 212서프, 서핑 강습이라고 보드에 써져있는데, 거길 찾아가면 있다. 처음엔 과연이라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이지만 이젠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도장을 찍는 곳이 돼버렸다. 다음 주에 라인업 강습 들으면, 내 인생 서핑 스승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이것저것 언니가 도와주는 게 많아서, 이제 선생님에서 언니로 발전한 우리 사이, 발리 체류에 많은 힘이 된다. 

아직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내게, 바다는 한정된 시간에만 품을 내준다. 너무 일찍 간 어느 날, 때를 기다리면서 그린 그림. 바다에서 서핑하다 보면 파도에 밀려 한참 떨어진 곳으로 흘러가는데, 그곳에서 212서핑 본부를 찾으려면 매의 눈으로 파란 깃발을 물색한다. 돌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바다 깊은 곳에서 열심히 패들링 해 파란 깃발 앞쪽에서 파도를 타고 나가거나, 패들링 할 힘이 없으면 파도 타고 나가서, 보드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거나. 이제 가면 다들 아침인사하고, 오늘도 열심히 타자고 하고, 이제 잘 탄다고 칭찬해주는 이곳. 

11-7. 이곳도 덴파사르.

에어비앤비 호스트 에이프릴라가 데려가 준 Bajra Sandhi Monument, 발리 민중 투쟁 기념비. 현지인 에이프릴 라동 겉에서만 보지, 안에 들어가 본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입장료 내는데, 에이프릴라가 가이드인 줄 알고, 무료로 들어가란다. 뭔지 모르지만, 갑자기 개 이득. 들어갔다 나오는데, 웬 사람들이 나랑 사진 찍고 싶다 그래서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같이 찍었다. 나중에 되니까 에이프릴라가 한국인 본 게 처음이라서 같이 찍은 거란다. 요새 한류가 유행이라, 아마도 나를 연예인으로 생각한 거 같다고... ㅋㅋㅋㅋㅋㅋㅋ 뭐지 강호동으로 생각한 건가.

11-8. 마지막으로 이건 지금 내가 머무는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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