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카레집

쓸쓸하게 와서 쏠쏠하게 돌아갑니다

by 미뇽

나고야에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라카와고. 내리기 전부터 뱃속에선 밥 달라고 천둥이 쳤다. 지금 떠올려도, 나고야 여행 중 가장 배고픈 순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도 속이 사각사각하다며, 배를 어루만졌다. 원래는 소바 집을 갈까 했는데, 한국인은 밥심이니까, 밥을 파는 곳을 가자 싶어 오츄도(落人, Ochuudo)라는 카레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라카와고의 전통 양식인 갓쇼즈쿠리 아래에서 밥을 먹다니, 이거야말로 두 마리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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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츄도(落人, Ochuudo)라는 이름을 보고 처음엔 떨어지는 사람?, 이러다가 나중엔 쓸쓸한 사람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쓸쓸한 사람, 누구라도 이곳을 찾으며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공간이니까. 커피도 팔고, 카레도 팔고, 단팥죽(젠 자이)도 파니까. 다이소 뺨치는 다용도.

image_2161900631507791937013.png?type=w966 카레 세또와 이로리에서 끓고 있는 젠자이

카레와 커피와 젠자이, 모두 합쳐 1300엔. 카레를 굳이 그 가격에?, 할 수 있지만 난 다시 가면 두 개는 시켜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엄마도 언니도, 이제껏 먹은 카레 중에 가장 맛있다고 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너무 감동 쓰나미인 나에게 맞춤 멘트였나? 하지만 장담하건대, 아는 사람 모두를 데려놔도 만족쿠할 맛이었다. 전통 화로(이로리)에 앉아 먹는 것도 완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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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대로 거의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전날, 엄마가 야바톤에서 먹었던 하야시라이스가 눈에 아른거릴 정도로 건더기가 없는데, 한입 먹고 다 먹을 때까지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위에 올려진 황금빛 단호박이 단연코 화룡점정. 용의 눈 되시겠다. 카레의 매콤 담백한 맛이 심심하게 여겨질 때쯤, 단호박 조금 쪼개 앙 먹으면 아아아아앙. 쓰면서 침 고이는 맛. 그리운 맛. 연신 스고쿠 오이시데스네를 연발한 바로 그 맛. 엄마는 쌀이 정말 맛있네, 하면서 먹었다.


KakaoTalk_2017-10-12-16-13-08_Photo_59.jpeg?type=w966 당고 2개 들어가 젠자이. 젠자이만 따로 구매하며 당고 3개 주더라.


일본에서 거의 기피하듯 안 먹는 게 당고다. 그런데 이렇게 먹으니 당고가 거 참 쫄깃하고 맛있더라. 젠자이 속 팥 알갱이 살아있는 거 보임? 먹으면서 영화 <앙>의 도쿠에 할머니가 생각났다. 팥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매콤한 카레의 뒷맛을 완전히 잡아준 달달함.


KakaoTalk_2017-10-12-16-13-10_Photo_6.jpeg?type=w966 이로리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 한 변에 3명까지 착석.

처음에 담아준 젠자이는 차갑다. 다 먹으면 이로리에서 끓고 있는 따뜻한 젠자이를 무제한 퍼먹을 수 있다. 무한리필이라길래 세 그릇은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두 그릇을 먹었다. 역시 당이 들어가니까 포만감이 빨리 차올라서, 머리와 몸이 따로인 게 이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끝이냐고? 아니야 아직 칭찬 많아. 더 읽어야 해.


KakaoTalk_2017-10-12-16-33-24_Photo_59.jpeg?type=w966 이렇게 걸려있는 곳이 적어도 세 군데

사실 굳이 이 식당에 온 이유가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면, 할아버지가 컵을 고르라고 한다. 고를 정도로 컵이 많아?, 싶겠지만 정말 많다. 분명 할머니가 컵덕후인 게 분명하다. 엄마와 언니가 시킨 유자차는 시다. 커피 맛은 연하다. 다음엔 스트로옹 오네가이시마스, 해봐야지.


KakaoTalk_2017-10-12-16-29-33_Photo_78.jpeg?type=w966 연한 거 빼고 다 좋았던 커피

오츄도는 6명 이상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 고로 패키지로 오신 분들은 사요나라. 3명씩 총 12명이 앉을 수 있는 이로리가 있고, 2명이 마주 보는 테이블과 다섯 명 정도 앉는 자리 2개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로리에 앉았다. 재가 날릴까 싶었지만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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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한다는 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취향을 안다는 것. 문화는 거대한 하나의 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개개인의 취향이 모여 만든 흐름이다. 그래서 여정 속에서 개인의 취향을 마주할 때, 진정 여행을 왔다는 걸 실감한다.

노부부와 나 사이에도 취향의 접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