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과 신호등 그리고 비루
저녁 6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걸려 나고야 추부 공항에 도착했다. 엄마는 달이 너무 밝아서, 달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도착을 알리는 방송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네 사는 게 참 힘든 것 같더라, 하늘 위에서 엄마는 대뜸 그런 말을 꺼냈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말이 엄마의 마음을 울렸다고 했다. 공중에서 듣는 엄마의 말은 붕 떠있는 것처럼 들렸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저 그 사이라는 이름의 경계를 떠돌고 있는 것처럼. 우리 비행기는 곧 나고야에 착륙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퀴를 쭉 뻗어낸 비행기가 지면과 부딪혔다. 평형을 못 맞췄었어, 흔들림이 끝나기도 전에 꺼낸 말에 엄마는 그런 것도 아냐고 되물었다. 그럼 비행기를 몇 번을 탔는데,라고 말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 그 말엔 누리던 걸 못 누리게 될 박탈감이 녹아 있었다.
나고야 에끼 트레인 티켓 산닌 데스, 라는 말을 외우고 또 외웠는데, 막상 역 앞에서 티켓 구매 기계에 버튼을 찍어 티켓을 구매했다. 사람보다 기계가 편한 세상이다. 그리고 일본은 기계가 통하는 세상이고. Reserved,라는 말이 적혀 있는 곳은 돈을 추가로 내고 좌석 지성을 하는 곳이어서 가장 앞으로 가 1호칸에 몸을 실었다. 역시 사람은 언제나 가장 편한 곳을 찾아서 입구에서 멀면 멀수록 자리가 비어 있다. 매 시 17분에 출발하는 급행열차는 35분이면 나고야역에 도착한다. 출발 시간에 따라 길면 50분까지 걸린다며, 친절한 인포메이션 직원이 설명해줬다.
나고야 역에 도착해 숙소로 걸어가는 길, 삐룽삐룽, 횡단보도에서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빨리 건너라는 소리냐?
대답하기도 전에 발걸음을 잽싸게 놀리는 엄마의 소매를 잡는다.
- 아니 그냥 건너라는 소리야
빨리 건너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까지 와서 빨리 건널 필요는 없으니까. 11초 남았다, 하며 건너려는 엄마의 소매를 또 붙잡는다. 11초가 아니라 건너는 시간이 줄어드는 신호야,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엄마도 같이 천천히 걷는다.
아트라베르시아모, 건너자는 이탈리아어가 떠오른다. 그저 건너가자는 말이 왜 기억났을까. 아무도 재빨리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 곳에 와서야 굳이 스스로를 재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던 옛날이 떠올랐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깨달았던 것들을, 엄마도 알게 되길 바라면서 소매를 꼭 잡았다.
숙소는 생각보다 가까웠고, 예상보다 신식이었다. 빨리 짐을 풀고,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젊은 사람들은 편의점 투어하러 일본 올 정도라니까, 내 말에 엄마는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븐일레븐, 훼밀리마트, 익숙한 이름들이 일본에선 더 반가웠다. 그 사이에서 로손을 찾지 못한 아까움에 아사히, 산토리, 기린 이찌방야를 집어 들었다.
19세 음료라는 안내 밑에 알겠다고 체크해야 했다. 훼밀리마트는 한국말로 알았다 했고, 세븐일레븐은 그렇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숙소 로비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할머니를 만났다. 엄마가 강아지를 보고 우쭈쭈하자, 할머니가 곤방와, 하며 인사를 건넸다. 곤방와, 인사하자 할머니가 와따시노 이누가, 하며 말을 했다. 하잇, 아아, 소데스까, 하자 할머니가 빙긋 웃으며 소오데스 했다.
- 뭐라고 한 거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엄마가 물었다.
- 몰라
내 말에 엄마가 입을 가리곤 웃었다.
집에 들어와 앉기 무섭게 맥주캔을 탔다. 4캔이 금방이다. 슈쿵, 슈쾅, 슈쿠, 슉 하는 소리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나 마시려고 산 맥주를 엄마가 더 잘 마셨다. 우리나라에선 3800원인 맥주가 이 나라에선 1900원이다. 우리나라 카스가 이 나라 아사히구나, 쩝쩝 침을 삼켰다. 아사히, 슈퍼드롸이. 꿀꺽 침을 삼켰다. 맥주 먹으니 잠이 솔솔 온다고, 엄마는 누웠다. 나도 불을 끄고 누웠다. 잠이 오진 않지만, 내일을 위해 자야겠지, 하지만 잠이 오진 않는다.
아까 산토리 하이볼 캔맥주 하나 더 살걸. 이렇게 후회하며 나고야 첫날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