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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Sep 01. 2023

집주인이 방 빼! 해도 못 빼! 당당한 프랑스 세입자들

프랑스는 집주인보다 임차인 그러니까 세입자들을 위한 임대법인 듯한 느낌마저 들정도로 나라에서 법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임대인의 사정으로 세 놓은 집이나 방을 빼 달라해도 선택권은 세입자 그들에게 있다. 프랑스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다. 모두 월세이다. 보통 한 달이나 두 달 정도의 집세를 보증금으로 내고 한 달에 한번 집세를 내면 된다. 이중에는 이런 프랑스 시스템을 이용해서 배 째라 하며 집세도 안 내고 버티는 세입자들도 더러 있다.


프랑스에서는 세입자가 이사 가기 전 치러야 할 에따 데 리유 (etat des lieu)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그동안 세입자가 썼던 집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집주인과 직접 계약했다면 집주인이 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부동산을 통해 했다면 부동산 직원이 하게 된다.


보통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너무 상태가 안 좋을 경우에는 보증금에서 손해배상 비용이 제외된다. 그래서 세입자들은 에따 데 리유 하기 전에 집 상태를 깨끗하게 만든다.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부서지거나 고장 난 곳은 스스로 고친다. 나갈 때는 원래 계약 당시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



#1. 프랑스는 세입자가 왕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돌아오려고 서둘러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정한 거라 프랑스로 돌아가서 거주할 집을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우리 집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다른 이에게 세를 주고 갔었는데 아직 기간이 1년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다른 곳에 집을 구해야만 했다. 내 집이 있었지만 세입자가 있는 경우 아무리 집주인이라 해도 함부로 집 빼! 를 요구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프랑스이다.


만약 세입자가 동의할 경우 우리는 그에게 아장스 비용(복비)을 지불하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어쨌든 그것 또한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남편은 우선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우리의 귀국 사실과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겠느냐는 정중한 편지를 이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답장은 아주 간단하게 NO.

그 세입자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이럴 경우 우리가 아무리 변호사를 써서 계약을 해지해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를 대더라도 아마 백이면 백, 법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 편이다. 사회약자를 보호하고 임차인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프랑스 시스템을 알았기에 우리는 그냥 포기하고 다음 플랜을 짜야만 했다.  그걸 알면서 편지를 왜 보냈냐고 물으신다면, 그만큼 우리도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 어딘가에 살 곳을 찾아야만 했던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난감했었다. 내 집을 두고도 남의 집 살이를 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2. 집주인이 세입자를 간택하 듯 뽑는 프랑스


프랑스 주거법이 세입자 우선이니, 집주인 입장에서는 한번 잘 못 계약하면 집세를 안 내고 있어도 무조건 쫓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집을 세줄 때 정말 임차인을 간택하 듯, 집세를 제대로 낼 수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 이런저런 서류를 요구한다.


집주인과 직접, 또는 아장스(복덕방)를 통해 계약할 수 있는데 3개월간 급여증명서는 기본이고 (심한 곳은 6개월을 요구하기도 함) 세금명세서, 신분증은 물론 보증인(보증인의 경제력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 및 신분증)까지 필요하다. 외국 유학생의 경우 현지 보증인을 못 찾을 경우 은행에 6개월 또는 1년간의 집세를 미리 넣어 두고 그것을 증빙서류로 제출해야만 하는 '나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파리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 아장스나 인터넷을 보고 나에게 맞는 조건의 집이 나오면 먼저 전화나 메일로 방문예약을 잡는다. 경쟁이 심한 위치에 있는 곳은 예약날짜에 가보면 나 외에도 적게는 네다섯 명 많을 때는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경쟁자가 많기 때문에 나 같은 외국인은 '간택'이 안 될 확률이 높다.



#3. 드디어 아파트를 구하다!


결국 '지인찬스'를 쓰기로 했다. 파리에 사는 발 넓은 중국친구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가족이 살 만한 아파트를 구해달라고 하였다.


지인에게 연락이 왔고 남편 김 차장이 먼저 파리로 가서 집을 보고 계약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문했던 집은 위치나 집상태가 너무 안 좋아 고민하던 중 지인이 그럼 현지 중국인 커뮤니케이션 사이트에 들어가 보라고 해서 그는 그때부터 중국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집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파리 15구에 있는, 우리 가족이 살기에는 좀 작은 평수였지만 괜찮은 아파트를 찾았고, 살고 있던 중국학생인 세입자가 한 달 아장스 비용(복비)을 현금으로 요구했지만(이건 합법적인 게 아니기는 하다)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던 남편은 그 돈을 주기로 하고 이사 날짜를 조율해서 연락하기로 약속한 후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4. 깐깐한 집주인 할머니 안나를 만나다. (집주인과 직접 계약시 주의할 점)


아프리카에서 다시 프랑스 파리로 입성!. 애증의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래도 최소한 이곳에서는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릴 염려는 없을 것이고,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테니 집이 작더라도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계약은 세입자끼리 할 수 없다. 남편은 그때 이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고 살고 있던 그 중국 학생을 통해 집주인과 직접 통화를 하여 이런저런 전후 사정을 이야기한 후 이메일로 집주인에게 그동안의 급여명세서와 파리외곽에 우리 소유의 아파트가 있다는 증빙서류등을 보냈고 집주인에게 오케이 답장을 받은 것이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집 상태를 점검하며 절차를 받는 동안 우리는 근처 카페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온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아 나도 아이들도 피곤하고 지치기 시작했다. 남편을 재촉해서 한 번 가보라고 했다.


한참 후에 다시 돌아온 남편의 황당한 이야기. 그 중국 학생은 여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이제 온 지 일 년이 채 안되었는데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집을 빼게 되었다 한다. 근데 에따 데 리유가 뭔지도 모르고 하나도 집을 정리를 안 해 놓았다는 것이다.


남편은 집이 청소나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 지금 할머니 하고 그 중국 학생이 실랑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맙소사!


한참 후 할머니에게서 이제 끝났다는 연락을 받아 우리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휠체어를 탄 노신사가 함께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남편이 할머니와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난 방과 거실등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진짜 집이 엉망이었다. 집 상태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한마디로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전에 살던 사람의 물건인 듯 여기저기 물건들이 그대로 놓여있고 주방과 화장실은 정말 너무 더러워서... 나는 일단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증거로 남기기로 했다.


집주인 할머니에게 집 상태를 이야기하고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에따 데 리유 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전에 살던 학생이 이런 프랑스 시스템을 몰라 정리를 하나도 안 했으니, 청소비를 줄 테니 사람을 불러 청소를 시키라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기가 막혔다.


그다음에 하는 이야기는 더 황당했다. 이 집은 뫼블레 meublé (이미 가구나 냉장고, 세탁기등이 갖추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래서 원래 있던 것을 치울 수는 없다고 하였다.


네,,,그거는 이미 알고 있고요~ 제 말은 그 얘기가 아니고, 전에 있던 사람이 쓰던 물건들은 그럼 누가 치우나요?


할머니가 어깨 한번 으쓱하시며 나에게 30유로를 주시면서 이 걸로 사람을 사서 청소를 시키라는 것이었다.

겨우 30유로를 주고 사람을 불러 쓰라고?? 믿기지 않았다.

하아,,, 이 할머니 뭐지?


하지만 더 따진다고 해서 파리에 이제 막 도착한 우리가 법적으로 할 수도 없고, 게다가 갈 데도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는 그냥 30유로를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만 했다. 대신 에따 데 리유를 안 했으니 그걸 계약서에 명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도 나갈 때는 그냥 30유로만 주고 나가는 것으로! 할머니는 어라! 보통 아닌데? 하는 듯한 시선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시더니 냉소를 지으며, 다커(d'accord! 오케이, 동의한다라는 뜻)하면서 계약서에 수기로 내가 원하는 내용의 문구를 넣었고 사인을 하였다.


그냥 얼떨결에 할머니가 시키는 데로 집 상태도 확인도 안 하고 사인만 했다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잘 넘어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이렇게 주인과 직접 계약을 할 시에는 꼼꼼히 따져야 한다. 아무리 세입자를 보호하는 프랑스라 해도 서류에 사인 한번 잘 못하면 나중에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참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 터면 파리 오자마자 빙구가 될 뻔했다. :D


#5. 프랑스에서 '건물주'를 꿈꾸지 않는 이유


프랑스에서 거주용으로 임대 계약을 할시 개인일 경우 대개 3년 계약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아프리카에 5년 있었기에, 3년이 지난 후 자동 연장 계약이 되었고, 우리가 다시 돌아와야 할 때는 아직 계약기간이 1년이 남아있던 터라 살고 있는 사람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 없었던 케이스이다.


물론 법적으로 하려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많이 알려졌다시피 프랑스 시스템이 워낙 느린 곳이라 그렇게 시간낭비, 돈 낭비 하느니 차라리 다른 아파트를 알아보는 게 우리에게는 나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집주인이 맘대로 집세를 올려 받을 수 없게끔 파리를 포함 주요 도시들의 임대료를 규제하고 있다. 평균 시세보다 만약 월세를 올려 받으면 나중에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집이나 건물이 그리 큰돈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세금으로 나가니까.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에서 '건물주'를 꿈꾸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D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집을 사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 설명했다시피 집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러니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급여 명세서와 얼마간의 돈이 있으면 대출을 얻어(프랑스는 주택 금융 이자가 낮은 편임) 차라리 내 집을 마련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평생 남의 집 살면서 월세로 내야 하는 돈으로 내 아파트를 사서 그 대출금을 갚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우리 소유의 아파트를 장만하였다.

우리가 가진 월급 명세서 몇 장으로 은행 대출 얻어 집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물론 필요한 서류들이 더 많이 있지만 비유하자면 몇 개월간의 월급 명세서만 있으면 아파트 대출 융자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고 일 년 후 코땡땡이가 지구촌을 휩쓸었고, 그러던 중 앙드레아 집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다시 반년 후 집주인 할머니 안나도 할아버지를 따라가셨다. 그리고 그분들의 아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가 유산으로 돌아갔고 이제 집주인이 바뀐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럼 우리 이사 가야 하는 건가? 주인 명의가 바뀌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야 했다.

아이들도 아프리카에서 와서 이제 좀 프랑스에 적응하나 싶었는데, 아이들 학교가 제일 걱정이었다. 청소년이 된 아이들은 학교 옮기는 것을 너무 싫어했고, 직장 문제도 있고, 우리 집은 이미 그동안 계약이 만료되어 또 다른 세입자에게 세를 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아,,, 산 넘어 산이로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안나 할머니의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편지 내용은 아직 우리의 계약 기간이 일 년 반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계속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휴,,, 저절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대인이면서 임차인이기도 했던 내가 느끼기에 프랑스의 이런 세입자보호법은 임대인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 공정한 조건에서 세입자들이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같다. 올바른 절차 없이 갑작스럽게 임대료를 인상할 수도 없고, 어느 날 갑자기 와서 방 빼! 를 요구할 수 없으며, 집이나 건물의 유지보수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세입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은 다시 원래 우리의 집이었던 아파트로 돌아와 살고 있다. 이제 진짜 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이사오던 첫날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 집 놔두고 3년을 세를 살았다.

프랑스가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D





<< 프랑스에 살면 좋을 줄 알았는데, 은근 난감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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