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따라 아프리카에 살게 되면서 처음엔 낯설고 두렵기만 한 마음뿐이었는데, 그곳에 살면서 하나하나, 몰랐던 그들의 삶의 무게와 고민을 알게 되면서 아프리카인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방송 프로그램 '서민 갑부 케냐'편을 보면서 정말 공감했던 장면이 바로 사진 찍기 전 베이비파우더로 얼굴 표현을 화사하게 만드는 케냐 사람들의 인터뷰였다.
모든 아프리카인들이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내 주위에 있던 아프리카 여인네들은 톤 업 효과로 베이비파우더를 바르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오후, 집안일을 도와주던 파트리샤 -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파트리샤는 옷도 잘 입고, 늘 밝은 표정이었고, 외모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집안일을 끝내고 퇴근할 무렵 그녀는 항상 꽃단장을 다시 한다.
주방 뒷문으로 나가면 도우미나 기사들이 전용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다 파트리샤가 작은 거울을 보고 뭔가 열심히 바르는 모습을 발견한 나는 지금 바르는 게 뭐냐고 물어봤다.
파트리샤가 웃으면서 내게 내민 것은 존슨 앤 존슨 마크가 떠억 박힌 작은 분통이었다.
파트리샤 말이 베이비파우더를 바르면 얼굴 톤이 밝게 빛나고 화사해 보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좀 밝아 보이기는 했다. 너무 과하게 떡칠? 한 게 에러인 듯 하지만 확실히 화사해 보이기는 한 것 같았다.
아주 화사하고 이뻐졌다는 내 칭찬에 기뻐하며 퇴근하는 파트리샤를 보고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는 많으시지만 뭐랄까,, 순수해 보인다고 할까?
그런데 그들의 이런 베이비파우더 사랑을 그저 흑인들이 하얘지고 싶어서 얼굴에 바르나 보다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던 일이 생겼다.
한글학교 수업이 있던 어느 토요일.(나는 그곳에서 한글학교 교사로 한국 학생과 현지 학생들의 초/중등부를 맡고 있었다)
케이팝과 한국 아이돌에 관심 많은 다니엘라^^
얼굴도 이쁘고, 한글 공부도 열심히 했던 이 친구의 꿈은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거였다.
다니엘라 역시 베이비파우더를 애정 하는 친구였다. 그녀의 얼굴은 늘 뽀송뽀송^^ 베이비파우더의 톤업 효과가 정말 좋다는 걸 그녀를 보고 알게 되었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그렇지 노래도 제법 하고 특히 춤을 잘 추는 그녀에게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활동해도 되겠다고 칭찬해 줬더니 다니엘라가 정색을 하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 흑인도 아이돌이 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한 아이돌은 한국의 '아이돌'을 뜻함)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흑인으로 태어난 게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이제 14살밖에 안된 소녀가 자신의 피부색으로 인한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니엘라는 자기는 피부가 검어서 이쁘지 않기 때문에 아이돌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피부가 검어도 걸그룹은 할 수 있다는 말을 해 주지 못했다.
왜냐면 나 역시도 흑인 아이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당시엔 아직 한국에 흑인 아이돌이 생기기 전이었음. 현재 인터넷 검색으로 '파투'라는 세네갈 태생, 벨기에 출신인 순수 흑인 아이돌이 있는 것으로 나옴)
그래도 할 수 있다고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못 해주고 온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녀들의 베이비파우더 사랑이 신기하지도 재밌지도 않았다.
파우더 통을 들고 얼굴을 조금 더 하얗게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바르는 그녀들의 모습이 가끔 떠올라 한편으로는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더 이상은 웃기지 않은.. 내게는 정말 웃픈 이야기이다.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한글학교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준비해서 나눠주었다.
다니엘라가 수줍게 내민 손편지...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한글학교였지만 아이들과 그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다니엘라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다니엘라는 내가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오해를 했었다고 썼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자신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사람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에게 그토록 피부색에 대한 '열등감’에 빠지게 만든 걸까,,,
난 당연히 다니엘라를 차별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처음에는 그런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동양인이든 백인이든 검은 피부색 때문에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황당한 선입견 말이다..
자신의 피부색은 누와 noir (검은색)가 아닌 쇼콜라 chaucolat (초콜릿 색)라며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피부를 갈색 색연필로 칠하는 여섯 살 쎄나를 보면서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것이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이 어린 소녀들이 어느 날 철이 들면서부터 깨달은 -자신들의 피부색이 아름답지 못하다- 는 생각으로 스스로 움츠리고, 본인도 모르게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자라고 있다는 건 안쓰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해외에서는 늘 '인종차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그들도 자기네 '구역'에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둘째 뭉치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눈을 양옆으로 길게 찢는 시늉을 하며 '레 쥬 시누와 les yeux chinois' 중국사람 눈 -불어권에서 아시아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 놀림을 당했고 따돌림을 받았다.
이로 인해 뭉치는 그곳에서 마음의 문을 닫았고, 또래들에게 받은 마음의 생채기는 아프리카 떠날 때까지 아물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조물주로 받은,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피부색 때문에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서로 차별하고, 차별당해야 하는지...
어쩌면 뭉치 같은 해외에서 살아야 하는 한국인 2세, 3세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앞으로 수없이 그들을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있던 뭉치가 스스로 이겨내고 견디길 바랐다.
어느 날, 교실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뭉치에게 이야기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아마 태어나서 우리 같은 동양인을 처음 봐서 그런 거라고,
여기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신들과 '다름'을 받아들이는데 서툴러서 그런 거라고,
또한 네가 못 생겨서도, 네가 나빠서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모든 것은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데 그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그리고 그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수면으로 꺼내놓기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그들도 자신들의 지나간 아픈 역사가 남긴 흉터에만 연연하지 않고 평화로워지기를, 늘 자신들만 억울하게 당한다는 피해의식에서도 벗어나길 바란다고,
그리고, 우리의 눈도 이쁘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 한글학교 수업을 마치며 나는 그곳의 아이들을 꼬옥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