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아남기
호주에 도착한 이후로 셀레나가 있어서 딱히 새 친구를 사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거의 셀레나만 만났던 것 같다. 셀레나는 알제리인 아빠와 브라질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스위스-스페인-브라질에서 자란 아주 multi-cultural한 친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나 유머코드가 정말 잘 맞아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셀레나가 곧 7년간의 호주 생활을 청산하고 브라질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간 셀레나에게 너무 의존했던 것 같아 인간관계를 넓혀보고자 언어교환 모임에 몇 번 나가 보았다.
그중 셰릴이라고 하는 말레이시안 친구가 자기가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기껏해야 자기 친구 서너명 정도 소개시켜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20~30명 정도 만나는 대그룹이었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놀고 친구들도 새로 데려오고 소개시켜주는 모임인 듯 했다. 콜롬비아, 벨기에,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브라질, 싱가포르 등 정말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물밀듯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마치 전학생이 교실에 처음 등장한 순간처럼 나는 순식간에 새로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에게 나는 한 사람이지만, 나에게 그들은 수십명이기에 이름을 단번에 매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심성이 좋은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이후로도 시간되고 마음맞는 사람끼리 연락하여 종종 모임을 가지게 되어 당분간 심심하지는 않았다.
해외에서는 주문을 하고 이름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굳이 영어이름을 쓰지 않는다. 외국인이 한국에 온다고 해서 한국식 이름을 따로 만들지 않는 것 처럼 나도 그들의 필요에 맞추어 영어식 이름을 지어야하나 싶었다. 그리고 따지고보면 내 이름은 중성과 종성 모두 발음이 똑같은 영어단어가 있으니 노력한다면 발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직장을 비롯해 내 주변 외국인 친구들 모두 내 이름을 그대로 불러준다. 그래서 나는 유치하지만 내 이름을 그대로 불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영어이름이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기억해두는 편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나름대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짓는데 꽤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럼에도 편의상 영어이름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가 그러하다. 이름을 물어보고 스펠링까지 불러줘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내 이름을 고집하는 불필요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갈 때마다 아무 영어이름이나 댄다. 내 버킷리스트는 카다시안으로 주문 해보는 것 ㅋㅋ 성이 김씨라 그럼 킴 카다시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ㅋㅋㅋ
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식을 했다. 가장 가운데 있는 하얀색 티셔츠를 입은 여인이 케이커리의 주인장 나딘(Nadene)이다. 케이커리는 가족 경영 사업으로 엄마인 나딘과 회계를 담당하는 회계사 아빠와 베이커인 캐린(Caryn)이 함께 운영한다. 한국에서의 가족 운영 사업장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만 이곳은 완벽하게 그의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골손님에게 나를 딸이라고 소개하거나 내가 그만둔 이후에도 송년회나 회식에 초대해 줄 정도로 나에게 뜻깊은 곳이다. 시드니를 나의 제 2고향으로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호주에 있으면서 셀레나와 호주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나눈 적이 있다. 대륙임과 동시에 섬이기도 한 이 나라는 참 별난 것 같다고. 일단 겉으로는 모두 친밀하고 호의넘치지만 그 이상으로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오지는 오지끼리, 아시안은 아시안끼리 잘 섞이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마 워홀러나 이민자들 같은 임시거주자들이 많아서 그런걸까. 한편으로는 짧으면 몇 개월, 길면 1-2년 마다 작별인사를 해야하는 호주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들끼리 어울리려는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셀레나는 섬나라들의 특징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영국에서도 몇년을 산 셀레나는 섬나라 사람들은 섬 안과 밖을 구분짓고 그 밖의 것을 수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복잡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이번 회식으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호주 사회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