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휴직을 하고 써 내려간 이야기
[프롤로그]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휴직을 하고 써 내려간 이야기’
"팀장님, 많이 고민하고 드리는 말씀인데 저 휴직을 조금 써야 할 것 같아요…, 예상 치 못했다는 팀장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기도 한 것이 과장으로 승진 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꺼낸 단어가 결국 휴직이라니 말이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해가며 차선책을 묻는 팀장님께 최선을 다해 단호하게 말해버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케어가 필요하다고…, 잘못한 것이라곤 없는데 나는 왜 손이 떨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지려 했을까?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었다. 괜찮은 인생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수히 모호한 표현이 흘러간다. 지금 사는 인생도 괜찮지 않은가? 얼마나 대단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가? 괜찮음의 기준은 천차만별 일 테다. 아직 서른여덟의 나이지만, 곧 다가올 마흔에, 쉰에, 예순쯤 되어 돌아봤을 때 당연히 아쉬움은 없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괜찮은 인생을 살았구나라고 느끼고 싶은 게 나의 답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케어를 빌미로 하여금 그것만을 하기에는 하루하루흘러가는 선물 같은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던게 솔직한 나의 답이다.
괜찮은 인생을 산다는것은 잘 살고 못 사는 기준의 척도가 아니라, 나의 자리를 지켜가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사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자매로, 친구로, 선후배로서 적당히 자리를 지켜가며 나의 삶을 찾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주어진 자리를 지켜내는 것 만으로도 버겁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주어진 자리보다 내가 먼저라고도 말한다. 나의 자리를 지켜낸다는 것 또한 나에게는 괜찮은 인생을 살기 위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여러 관계 속의 나의 자리를 잘 지켜 내고 싶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관계만 잘 지켜 낸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인생일까?
노력했던 관계가 어긋난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부모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고 느낀다. 그러나 정작 상대방은 그 희생을 모른다는 것이 커다란 함정의 우물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일 테다. 누군가의 희생을 매번 느끼지 못하고 실아간다 는 것이 현실의 정답일 테다.
적당히 하자. 관계에 적당히 하며 나를 찾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 때 싫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 어린 시절 떠났던 소풍의 보물찾기 만큼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대충 접어놓은 보물 하나라도 찾고 싶어 한다. 시작을 알리면 제일 먼저 뛰어가는 친구, 마른 낙엽을 이리저리 뒤적여보는 친구 나무를 타고 올라가 살피는 친구, 덩그러니 혼자 넣여있는 쓰레기통을 들쑤시는 친구, 결국에는 그 친구들이 보물을 찾고야 만다.
보물은 항상 곁에 있다. 손에 쉽사리 쥐어지지 않을 뿐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물 찾기를 해보자. 제일 먼저 뛰어가 낙엽을 뒤적이고, 나무를 타보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안는 쓰레기통을 들쑤시다 보면, 어느 순간 똘똘 말아놓았던 보물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인생이라는 소풍에서 소중한 보물 찾기를 하기 위해 휴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