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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Apr 15. 2018

모든 시간

부산 이중섭거리 & 초량이바구길 전망대

날이 조금씩 풀리자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끓는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세상과 다른 시공간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둘러보면 누군가의 사연이 걸려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결국 오늘도 없는 체력을 끌어모아 언덕 마을로 향했다. 아직은 바람이 모질게 부는, 동백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애매한 계절의 부산은 어떨까.


부산 범일동의 골목 어귀에서 몇몇의 인부가 담벼락에 그림을 걸고 있었다. 아직은 변신의 냄새를 맡은 이들이 몰려들지 않은 듯 무척 조용하다. 관광객의 소음을 감수할 수 있을지 걱정될 만큼 단독주택이나 빌라가 빽빽하게 엉겨 붙은 주거지역. 대문 앞에 얌전히 놓인 과일의 사연이 궁금해지는 평범한 마을길이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백여 개의 계단을 올라설 때까지 곳곳에 거리의 주인공이 드러난다. 이 길의 끝에 ‘마사코 전망대’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름에 끌렸다. 화가 이중섭의 부인 이름을 붙인 게 무척 잘 어울려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중섭 전망대’로 표기되어 있다. 내심 그녀의 이름을 지운 것이 아쉬웠다. 오히려 ‘마사코 전망대’라는 이름이 그를 더욱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세계에 사랑이 머물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가? 작품 그 자체인,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숨긴 것처럼 보였다. 계단을 오르며 점점 숨이 차 오르면, 마지막 순간에 탁 트인 풍경과 함께 그의 가슴을 쿵쿵 치던 마사코의 이름을 마주하게 될 거라 기대했는데. 부부가 애틋하게 주고받은 편지를 떠올리며 이름을 불러보는 낭만적인 장면을 상상했지만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마사코의 이름이 사라진 전망대 좌우로는 색색의 지붕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근처에는 현대의 상징인 고층 아파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섭이 피난살이를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이 녹아있는 풍경. 그의 사랑은 잠들었지만 집집마다 또 다른 사랑이 담겨있겠지.



사람들은 호젓한 거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마을을 훑고 지나간다. 누군가는 전망대가 좋아서, 이중섭이 그리워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또는 적당히 구경할 게 있다고 해서 찾아왔을 범일동. 그녀의 이름이 묻힌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사랑을 떠올리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마음 한 구석이 달콤하고 저릿하다.  



한편 부산역에서 가까운 초량이바구길에도 전망대가 있다. 오래된 언덕길이 그렇듯 좁고 긴 계단이 이어진다. 관광지답게 계단부터 주변의 건물까지 구석구석 매만진 흔적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중간중간 붙어 있는 카페와 상점을 차례로 들락거리며 계속해서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마다 무척 아찔했다. 조금만 정신을 딴 데 두었다가는 밑에 있는 누구의 목숨까지 위태로울 것 같다.



바다를 옆에 둔 대도시에서 만나는 전망이라고 하면 이런 모습이 그려지려나. 한눈에 바다와 도시가 꽉 차게 들어온다. 단층집이 드문드문 서 있는 여유로운 바닷가 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 도시이자 바다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대자연을 마주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압도적인 모습이다. 상업화된 골목과 거대한 해안 도시의 풍경이 무척 빠르게 변하는 지금 세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서로 다른 언덕 마을에서 하나의 도시를 내려다본다. 과거를 떠올렸다. 사라진 이름의 여인. 그 여인을 사랑한 맑은 영혼의 예술가. 마을길로 애절함과 그리움이 흘렀다. 다른 곳에서는 현재를 생각했다. 한껏 꾸며진, 시선을 확 사로잡는, 현대적인 손길이 가득하다. 우리는 어쩌면 모든 시간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매 순간은 미래였다가 현재가 되고, 오래도록 과거에 머무르며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언제까지라도 높은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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