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겁고 고요한 여름의 호숫가
올해는 모든 것이 어수선하여 제대로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뭐하나 명쾌하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금세 꺼져버린다. 여행의 이유란 것도 그렇다.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용히 누울 만한 곳이 있기 때문에 간다. 예전의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이유다.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직전에 알았다. 몇 주 전에 내린 폭우로 합천에 침수 피해가 크다고. 시내가 온통 물에 잠겼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가도 괜찮을지 걱정이 됐다. 숙소로부터 답변이 크게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누워있기엔 충분했다.
여름이었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은 뭉개진 진흙 덩어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먼 길을 나서 초록을 봤다. 자연은 온 날개를 펼친 공작새 같았다. 마치 가을이 오기 전에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처럼. 누군가가 애써 돌려놓았겠지만 그 수고가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아무도 모를 만큼 안온하게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거창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삶을 지킬 수 있으니까. 고통받은 이들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쳤다.
일주일 전에 근처의 어느 폭포는 출입금지 표시가 붙었다고 했다. 모르고 찾아갔다가 낭패를 본 이방인이 가지 말라고 남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아직 그대로 일지 모른다. 예전이라면 갈 수 있을지 찾아봤을 법하지만 흥미가 없었다. 나는 그냥 누워있고 싶었을 뿐이다.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비가 언제 쏟아졌는지 기억할 일 없이 호수는 고요했다. 수위가 높아졌고, 호숫가로 내려가는 자갈길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정도에서야 비가 많이 왔음을 실감할 뿐, 호수는 그저 뜨겁게 고요할 따름이었다. 사실 관리인이 애썼기 때문에 내가 지금을 마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자 한 봉지와 커피 한 병. 치울 쓰레기도 거의 없는 하루. 누웠다 일어나 잠깐 밖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고 눕기를 반복하며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이 좁은 땅덩이에서도 가뭄과 폭우가 동시에 오고 간다. 모두가 평온한 날 같은 건 원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오리가 물속에서 발버둥을 쳐야 고고하게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두 애를 쓰고 있다. 다른 곳에 눕겠다고 마음 먹는 것도 사실은 애를 쓰는 일이다.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