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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Dec 31. 2020

2020년 돌아보기

내 머릿속의 키워드. 분기별 결산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면 뭔가 히스토리를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데요.. 작년 이맘때는 2019년 독서 리스트를 정리했었고, 올해도 비슷한 걸 해보려다가 워낙 이슈가 많았던 한해라서 분기별로 정리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개인으로 보면 성취감보다는 대부분의 애매한 결과물과 일부 부끄러움의 순간, 그리고 깊은 한숨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제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고 우쭈쭈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제 머릿속을 채웠던 키워드와 고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2020 1Q.

- 이직


2020년의 시작은 온통 이직 생각뿐이었습니다. 사실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현재 내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더 늦기 전에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15년 이상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딜리버리 하는 일을 해왔는데, 남이 다 만들어놓은 거 말고! seed부터 콘텐츠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껏 해왔던 일을 리셋할 만큼 강렬했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사나 스튜디오로 뛰어들기엔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많았고, 또 장기적으로 플랫폼을 들고 있는 콘텐츠 회사가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비교적 선택은 명확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제 생각들을 문서로 정리하면서 '해보고 싶다'라는 열망은 더욱 커졌고, 그렇게 원하던 회사에 가게 되었을 때는 "올해는 다 이뤘다!" 싶을 만큼 기뻤습니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이직'이었으니까요.



2020 2Q.

- 팬 커뮤니티, 그리고 중국의 콘텐츠 앱

- PM/PO 에게 배우기


회사를 옮기면서 이제 서비스/프로덕트에 대한 업무는 저와 멀어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삶은 예측 불허! 저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첫 과제는 팬덤을 부스팅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결제), 이 세 가지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서비스의 '팬'을 만들어야 한다." Execution이 잘 되었던 서비스 기획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업력으로 확신을 가졌던  제 서비스 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던 role은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Vlive, 위버스 그리고 당근 마켓, 토스 등 팬심과 커뮤니티가 결합된 국내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이들의 핵심 콘텐츠는 저희가 다루는 IP (웹툰, 웹소설, vod)와 다르고, 팬으로 정의한 유저의 속성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참고는 할 수 있으나 벤치마킹의 적절한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던 와중에 중국의 웹툰/동영상 앱 서비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No.1 웹툰 플랫폼 콰이칸, 그리고 새로운 동영상 기대주 bilibli

국내의 웹툰과 동영상 서비스가 '콘텐츠 소비'에 포커스하고 있다면, 이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서비스 볼륨을 키우고 기존 서비스와의 차별화에 성공했습니다. 유저의 2차 창작, 리뷰, 활동 데이터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체류 시간과 충성도를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들의 성공 방식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콘텐츠 플랫폼 = 콘텐츠 놀이터로 정의한 관점. 그리고 유저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디테일하게 구현한 콘텐츠 생산 툴은 새로운 자극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열심히 고민했던 프로젝트가 실행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아쉬움 때문인지 한동안 마음을 접지 못하고 PM / PO 역할을 잘하기 위한 책, 스터디 모임을 계속 기웃거리기도 했는데요. 간절했던 시기에 읽었던 내용들이라 올해를 회고하는 글에 꼭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저에게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던 헤이 조이스 <PO의 세계> 강연 또한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꼭 제품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inspire 되는 내용이라, 이 강연을 듣고 "아 이제 내려놓고 다른 일로 가도 되겠다"라는 정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헤이 조이스 <PO의 세계 :  토스 PO 김유리 님 강연 내용 캡처>


2020 3Q.

- 사이드 프로젝트 : 뉴스 큐레이터와 웹북 저자


뜨거운 초여름을 보내고 한동안 나는 무얼 해야 하나..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사이드 프로젝트'였습니다. 다만, 업무와 너무 동떨어진 일을 벌이기에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회사 밖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퍼블리의 뉴스 큐레이터 (현 커리어리)입니다. 기사를 읽고 요약하고 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늘 해왔던 일이고, 오히려 나에게 강제 조항(!) 이 생기면 루틴 안에서 꾸준히 할 것이다..라는 생각에 덜컥 시작부터 했는데 결과적으로 "저지르길 잘했던" 일이었습니다.


서비스를 살펴보니 코어 유저들이 선호하는 주제는 단연 프로덕트와 좋은 PM이 되기 위한 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른 큐레이터들이 너무 잘하고 있었고, 저의 Main 카테고리로 삼기에는 제 경쟁력이 충분하지 못해서 이것도 역시 제가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팬덤을 주제로 선정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주 2-3회 포스팅을 했더니 구독자가 3300명을 넘는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저에게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었는데요. <Radish>라는 영미권 독서 플랫폼이 대규모 투자 유치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해당 서비스를 직접 써보고 리뷰하는 저자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번역과 큐레이션은 꾸준히 해왔지만 제 생각을 긴 글로 쓰는 건 아직 자신이 없었는데, 지난봄과 여름,  열심히 프로덕트 스터디했던 게 아까워서 뭔가 결과물을 남겨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Go 하면 뭐든 되겠지 싶어 두어 달은 주말-아침 쪼개서 틈틈이 매달렸는데요. 그 과정에서 CPO님도 직접 만나 인터뷰도 하게 되고, 부족한 영어로 웹소설도 읽어보는 등 '사이드 프로젝트'의 의미를 충분히 살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2020 4Q.

- 이미테이션 그리고 메타버스

- 회사 안의  마드


팬 커뮤니티 이후 저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드라마 <이미테이션>입니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가장 팬덤이 많은 작품 중에 하나이고 무엇보다 KPOP 아이돌의 세계를 조망하는 작품이라는 것이 또 한 번 제 마음에 불을 지폈습니다. 단순히 웹툰 원작 드라마 한 편이 나오는 게 아니라, 원작 IP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확장되는 IP Universe를 최대치로 구현해 볼 수 있을까? 리더가 던진 이 질문에 어떻게든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 와중에 KPOP 씬에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아이돌이 등장합니다. 아바타와 실제 캐릭터가 연결된 세계관을 갖는 SM의 에스파라는 그룹입니다.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언택트 공연, 영상통화와 캐릭터 팬사인회 등 새로운 아티스트 소비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가상세계과 현실을 넘나드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도 급부상합니다. IP niverse, 메타버스, 웹툰 IP... 뜨는 트렌드가 있기는 한데,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려면 뭘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안고  2020년의 끝자락이 지나가네요.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회사 안에서도 분기-반기 주기로 업무가 바뀌는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의하기가 모호해졌습니다. 누군가는 불확실성을 견디라고 하지만 정작 내 안에 쌓이는 것이 있을까 불안함은 커져만 갑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긍정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어디선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저는 요즘 '회사 안의 잡 노마드족'이라고 제 자신을 얘기합니다. 2021년에도 지금 하는 일을 제가 계속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주어진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내년의 목표를 잡아보고자 합니다.


2020년 수고한 모두에게 응원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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