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D+17|캄보디아 씨엠립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멋진 광경에 눈이 익숙해져, 유명한 건축물, 혹은 대단한 자연을 보아도 별로 감흥이 없어지는 때가 온다. 내게는 그럴 때 새롭게 자극을 주어, 여행 첫날의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1.
첫 번째는 에펠탑, 타지마할 등 평소에 사진, 영상 등으로 많이 접했음직한 유명하고 웅장한 건축물에 어울리는 방법이다. 설명을 위해 에펠탑으로 예를 들어보자.
에펠탑을 두고 등을 돌린다.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며 생각한다.
강아지 밥을 줬던가?
메일 확인은 했던가?
이따 뭐 먹지?
아 A와 B가 드디어 사귄다던데…!
따위의 아주 일상적인 생각 말이다.
일상적인 잡념에 파묻혀, 머리가 바로 뒤에 에펠탑이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게 만든다.
아니, 사실 아예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잊어버렸다고 최면이라도 걸어본다.
그리고 마음이 일상의 어느 하루, 아주 잠잠한 상태로 돌아왔을 때,
정말 무심코 뒤를 돌아본 듯,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 에펠탑이 있다.
싸아- 팔뚝에 미세한 소름이 돋는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2.
두 번째는 이탈리아의 포로로마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 황량한 유적지에 어울리는 방법이다.
오래된, 그리고 거대한 유적물 앞에서 눈을 감는다.
방금까지 눈 앞에 있던 그곳의 가장 번성했던 시기를 머릿속에 아주 생생하게 그려본다.
마치 영화의 200년 전, 300년 전 회상 씬처럼 말이다.
마차가 다니고, 아이들이 뛰논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어딘가에서 밥 내음이 풍겨오고, 일꾼들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높은 직위의 공주 혹은 왕비가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그녀가 있는 건물에는 황금빛이 가득하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한 편에서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가
뜨겁게 키스를 나누고 있다.
지금이다.
그 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 눈을 번쩍 뜬다.
싸한 황량함이 온몸을 감싼다.
시간의 흐름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처음 내가 유적지 앞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뭐하냐고 묻던 머니도
이제는 멀찍이서 날 따라 한다.
앙코르와트는 후자의 방법이 참 어울리는 곳이었다.
때문에 나는 앙코르와트를 구경하는 3일 내내
끊임없이 눈을 감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또 뜨고,
왠지 모를 쓸쓸함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앙코르와트.
그곳은 눈을 뜬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유난히 서글픈 곳이었다.
어떤 순간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곳인데,
누군가는 애타게 사랑했을 그곳인데,
눈을 뜨는 찰나의 순간,
내 몸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진다.
역사는 흘렀고 흔적만이 남았다.
어쩐지 가슴이 알싸하다.
시간의 흐름은 아무래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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