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어른일기 Jul 04. 2022

정기적 돌봄이 필요합니다

며칠 전부터 샤워만 하면 온몸이 간지러웠다. 로션을 발라도 소용없었다. 긁어서 붉어진 피부는 시간이 지나야 겨우 진정되었다. 피부가 건조해서일까? 땀을 흘려서 그럴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어젯밤 샤워를 마치고 피부는 또 간지러웠다. 그리고 문득 보풀이 나고 낡아진 바디타월이 떠올랐다. 설마 이것 때문일까? 교체 시기가 지난 지 오래된 바디타월이 의심스러웠다. 매번 사야지 하면서 한편으로 좀 괜찮지 않을까 하며 미뤘던 게 이런 사단이 난 듯했다. 오늘은 기필코 바디타월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해야 할 목록에 ‘바디타월 사기’라고 적었다.   

   

떨어지면 큰일 나는 생필품 목록이 있다. 그런 품목으로는 화장지, 샴푸, 손 세정제, 여성용품, 바디 클렌저 등이 있다. 사람마다 품목이 다르며 더 늘어날 수 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갖춰야 하는 물건은 생각보다 많다. 그것들을 제때 사는 것도 1인 가구 셀프 돌봄에 포함된다. 이것들은 꼭 있어야 하므로 체크에 또 체크를 하며 신경을 쓴다. 요즘은 스마트폰만 하나로 쉽게 돌봄을 실천할 수 있다.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까지 순식간이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문 앞까지 배송해준다. 굳이 마트에 가서 두 손 무겁게 오질 않아도 되니 참으로 좋다. 엄지 쇼핑을 즐기는 나로서는 정말 편리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주기적인 생필품은 이렇게 신경 쓰지만 의외로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물건에는 소홀해진다. 예를 들면 칫솔, 수건, 행주, 바디타월 등이 있다. 당장 급하지 않으니 미루게 되고 미루다 보면 나와 같이 이런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다. 날짜를 기록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건들이 보내는 교체 시기를 알아차려야 한다. 돌봄을 미루다가는 결핍이 티가 나고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일을 마치고 바디타월을 사러 갔다. 동그란 바디 네트는 거품이 풍성하게 나지만 등은 닦을 수 없어서 패스. 긴 수건처럼 생긴 바디타월은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지만, 왠지 거품이 잘 날 것 같지 않아서 패스. 마지막으로 손잡이가 있는 샤워브러쉬를 봤다. 면적은 작지만, 등을 시원하게 닦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디타월보다 좀 더 수명이 길 듯했다. 그래 이게 좋겠다. 만원에서 백 원 모자라는 9,900원을 계산했다.


집으로 와서 보풀이 심한 바디타월을 한 번 째려보고서 새로 사 온 샤워브러쉬로 샤워했다. 손으로 만질 땐 부드러웠는데 막상 피부에 닿으니 살짝 거칠면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특히 등을 닦을 때 좋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서 피부는 간지럽지 않았다. 역시 문제는 낡은 바디타월이었다. 바싹 건조된 바디타월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속이 후련했다. 집 안을 둘러보며 교체가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너 차례다.     

      

점심시간 산책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볼 수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고양이 두 마리 때문이다. 처음 이 고양이를 본 것은 올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날이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살짝 들고서 특유의 도도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고양이 같은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털에서는 윤기가 돌았으며 포동포동했다. 며칠 뒤 바닥에 눈이 질퍽해진 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자세히 보니 바로 그 고양이가 있었다. 그의 짝꿍 고양이는 하얀색? 회색? 같은 털이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런 색이었다. 고양이 두 마리는 주변 회사원들의 사랑과 돌봄을 받고 있었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과 매일 챙겨주는 밥과 간식 그리고 장난감까지. 모두의 돌봄을 받으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운이 좋은 녀석들이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누가 돌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기준을 아직도 명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어른도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신을 돌봐야 한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돌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좀비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