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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13. 2022

틈 사이에 자라난 미운 잡초 한 움큼

세상을 외면하고 싶을 땐 보도블록 틈에 피어난 잡초를 본다. 여기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곳엔 언제나 잡초가 있다. 메마른 흙은 어떤 영양분도 없을 것 같은데 무엇을 먹고 이렇게 자랐을까? 쳐다봐 주는 이 하나 없는 틈에서 살아보겠다고 연약한 몸을 비집고 나와 결국 햇빛을 보고야 만다. 짓밟고 독한 약을 퍼붓고 뿌리까지 뽑아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잡초는 또 자란다.


잡초와 다른 생명을 지닌 것도 있다.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려다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곳에 덩그러니 놓인 무언가가 있다. 한때 뜨겁게 타올랐지만, 지금은 자신의 모든 임무를 마친 새하얀 연탄 한 장이다. 툭 하고 발로 차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모를 단단함이 느껴진다. 연탄구멍에는 싱그러운 꽃 한 송이가 꽂혀있다. 그 옆 종이상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생명을 잃은 연탄과 생명이 넘치는 꽃의 이상한 조합이다. 하지만 꽃으로 인해 연탄은 다시 한번 자신의 역할이 생겼다. 꽃을 받쳐주고 빛나게 해준다. 덕수궁 근처에 올 일이 생기면 연탄 꽃을 꼭 보러 간다. 꽃 한 송이가 주는 자그마한 위로가 있다. 그 꽃은 누군가에 의해 주기적으로 바뀐다.


‘뜨겁지 않아서 아직도 피어나지 않는 걸까? 피어나긴 할까?’



어둠이 방을 지배했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마음에 싹튼 미운 잡초를 발견했다. 이 잡초는 뽑아내면 다시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잡초다. 침대에 눈을 감고 있지만, 눈을 뜨나 감으나 혹은 당장 내일이 밝아오나 나에겐 다 똑같다. 모두 검고 막막하다.


‘가난한데 아프면 어떡하지?’


요즘 내 안에 싹튼 제일 큰 미움 한 움큼이다.


우선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침대가 가장 문제다. 당근마켓에 저렴하게 올려놓으면 팔릴까? 팔리지 않는다면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럼 하는 수없이 나눔을 해야겠다. 책상과 의자, 라탄 테이블은 저렴하게 올리면 팔릴 것이다. 옷은 모두 멀쩡하니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해야겠다. 남은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두 버려야 한다. 노트북과 아이패드는 제일 마지막에 처분하기로 생각했다. 팔면 돈이 조금 될 것이다. 카드값을 모두 갚아야 한다. 잠깐 알바를 해서 돈을 좀 모을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보증금을 받고 집을 빠져나오는 것이다. 가벼운 배낭 하나면 충분하다. 버스보다는 기차를 타야겠다. 산보다는 바다가 좋겠다. 가장 저렴한 민박을 찾아야 한다. 민박집 앞에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걸어서 바닷가도 있고 작은 슈퍼도 있으면... 그러려면 미리 정보를 알고 가면 수월하겠지. 근처 읍내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자리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무한대로 뻗어나갔다. 마음 한쪽에 틈은 처음보다 더 벌어졌다. 벌어진 틈 사이에 자리 잡은 잡초 옆의 또 다른 잡초가 생겼다. 젠장! 불꽃처럼 살다가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사가 주문을 외우면 사라지는 마법처럼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휴대전화를 켜고 검색창에 [무연고자 장례]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가족은 멀쩡히 살아있다. 이럴 경우 어떤 단어로 검색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멋대로 피어난 잡초는 사람을 성가시게 만든다. 손가락으로 잡초를 한 웅큼 집어서 뽑았다. 지금은 뽑혔지만 틈 사이로 언제 다시 잡초가 자랄지 모른다. 벌어진 틈을 메우려고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생각 하나를 박았다. ‘일단 자자.’ 아침이 밝아오면 어둠이 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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