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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28. 2022

내 머리 위에 먹구름

변덕이 하늘을 찌르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우산을 펼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일이 잦아졌다. 날씨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대체 어디에다 장단을 맞춰야 하나! 계절이 여름으로 달려갈 때면 변덕쟁이 날씨님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내 맘과 같이 이리 변덕을 부리고 있으니 우산은 꼭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걷는 쓸쓸한 어른이 되는 수가 있다.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처량한 모습이 되고 싶진 않았다. 다행인 건 아직 여름 초입이라 빗방울이 그리 굵지는 않다는 거다. 본격적인 장마는 아직 오질 않았다. 벌써 장맛날 출근길이 걱정이다. 아침에는 비가 내리더니 오후에는 해가 비췄다. 가방 속에 뒹굴뒹굴하고 있는 우산은 펼쳐지지 못한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우산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새로 산 우산을 한 번씩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비 오는 날이면 버스, 지하철, 카페 등 주인을 찾지 못한 우산이 나뒹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새로 우산을 살 것이다. 그리고 또 잃어버릴 것이다. 튼튼해 보이는 우산도 한철 사용하고 나면 우산살이 빠지거나 휘어진다. 난 이럴 때 우산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픈 우산을 고쳐주시오. 우산을 이리 눕히시오. 어허! 이런 우산살이 휘어졌구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게요. 그대는 잠시 비를 피하고 있구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두 수선집처럼 우산을 고쳐주는 곳이 있다면 우산의 수명이 꽤 길어질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가방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우산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이 우산은 영국 여행에서 사 온 우산이다. 한국에도 매장이 있지만 영국 브랜드라는 이유로 굳이 매장에 들러서 사 왔다. 우산은 가볍고 작은 3단 우산으로 변덕쟁이 날씨와 아주 찰떡이다. 영국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나라다. 우산을 사고 매장을 나설 때도 비가 내렸다. 우산은 자신의 나라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영국의 밤거리는 낯설고 신기했다. 비를 맞으며 달리기하는 멋진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와!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달리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없다.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부러웠다. 비를 맞는 어른이 처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오히려 멋졌다. 우산은 영국에서 데려온 지 4년이 되어간다. 고장 한번 없이 비 내리는 날엔 멋진 우산이 되어줬다.


예고 없이 내리는 비를 맞을 때면 난 초등학생 어느 여름날로 돌아간다. 학교 정문 앞에는 가지각색의 우산이 보인다. 우산을 쓰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이다. 엄마들은 일제히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행여나 아이가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우산 사이로 고개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난 엄마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엄마를 찾았다. 일하는 엄마는 나에게 우산을 주러 와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비를 맞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물웅덩이에 괜히 발을 씻기도 하고 가방으로 비를 막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리는 비를 피할 순 없었다. 저 멀리 엄마와 걸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울어진 우산을 부러워했다.


다음 주는 내내 비가 내린다. 또 먹구름은 변덕을 부리겠지. 우산은 가방 속에서 펼쳐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비야 내려봐라! 난 이제 우산을 기다리는 아이가 아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있고 피할 수 없다면 우산을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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