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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12. 2022

바나나 한 덩어리 물러터진 마음

자를까?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반묶음으로 질끈 묶고서   길러볼까? 고민은   동안 이어졌다. 결국 주말을 앞두고 예약을 하는 것으로 고민이 마무리되었다. 스무  이후 처음으로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쓰디쓴 실패를 맛본  반년이 지났다. 이미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손쓸  없게 되었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미용실에 갔을  겨우 단발과 비슷하게 다듬어진 머리는 그사이 조금 자랐고  마음처럼 삐뚤빼뚤 해졌다.     


예약 시간에 맞춰서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현관에 놓아둔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잊지 않고 챙겼다. 그 안에는 바나나 껍질과 다 먹기도 전에 물러버린 바나나가 한 덩어리처럼 되어있었다. 혼자 살게 되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안 좋은 점을 굳이 꼽자면 과일을 챙겨 먹기 힘들다는 거다. 1인 가구를 위해 소량 포장된 과일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잘 가질 않는다. 깎아 먹는 것도 귀찮고 막상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기억이 사라진 듯 방치하기 일쑤다.

이번에는 꼭 챙겨 먹어야지 다짐하면서 다시 과일을 사 온다. 그러나 하루 이틀 챙겨 먹다가 어김없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려진다. 호기롭게 사두고 물어지고 썩어서 버리게 되는 것이 과일의 숙명인 듯했다.   

  

어느 날 백화점 식품관에서 나와 같은 또래 혹은 더 어릴 수도 있을 법한 남자가 바구니에 샤인 머스캣 두 송이를 들고 유유히 쇼핑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비싼 과일을 거침없이 담는 그 남자. 과일을 챙겨 먹을 줄 아는 그 남자. 어쩌면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지 않을까?


바구니에 과일을 제일 먼저 담은 그를 보면서 과일조차 챙겨 먹지 않는 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과일을 챙겨 먹지 않는 건 귀찮아서가 아니라는 것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가격 앞에서 멈칫하고 저렴한 과일 또는 과일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토마토만 먹기 때문이었다.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 선택의 폭이 좁아서 매번 같은 과일을 먹었다. 그러다 먹지 못하고 중간에 먹는 것을 포기하는 거였다.

과일 앞에선 바구니에 담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술 앞에서는 거침없이 지갑이 열렸다. 몸에서 알코올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다시 채워 넣기 바빴다. 왜 몸에 좋은 과일을 양껏 먹는 걸 포기하고 술을 선택할까?

 덩어리가 되어버린 노란 봉투를 버리면서  먹지도 못하면서   샀을까 하는 후회를 했고 마음 한구석이 물러져서 으깨지고 뭉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러터진 슬픔 한 덩어리와 삐뚤어진 마음을 털어내 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대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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