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를까?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반묶음으로 질끈 묶고서 좀 더 길러볼까? 고민은 몇 주 동안 이어졌다. 결국 주말을 앞두고 예약을 하는 것으로 고민이 마무리되었다.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쓰디쓴 실패를 맛본 지 반년이 지났다. 이미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손쓸 수 없게 되었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 달 전 미용실에 갔을 때 겨우 단발과 비슷하게 다듬어진 머리는 그사이 조금 자랐고 내 마음처럼 삐뚤빼뚤 해졌다.
예약 시간에 맞춰서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현관에 놓아둔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잊지 않고 챙겼다. 그 안에는 바나나 껍질과 다 먹기도 전에 물러버린 바나나가 한 덩어리처럼 되어있었다. 혼자 살게 되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안 좋은 점을 굳이 꼽자면 과일을 챙겨 먹기 힘들다는 거다. 1인 가구를 위해 소량 포장된 과일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잘 가질 않는다. 깎아 먹는 것도 귀찮고 막상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기억이 사라진 듯 방치하기 일쑤다.
이번에는 꼭 챙겨 먹어야지 다짐하면서 다시 과일을 사 온다. 그러나 하루 이틀 챙겨 먹다가 어김없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려진다. 호기롭게 사두고 물어지고 썩어서 버리게 되는 것이 과일의 숙명인 듯했다.
어느 날 백화점 식품관에서 나와 같은 또래 혹은 더 어릴 수도 있을 법한 남자가 바구니에 샤인 머스캣 두 송이를 들고 유유히 쇼핑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비싼 과일을 거침없이 담는 그 남자. 과일을 챙겨 먹을 줄 아는 그 남자. 어쩌면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지 않을까?
바구니에 과일을 제일 먼저 담은 그를 보면서 과일조차 챙겨 먹지 않는 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과일을 챙겨 먹지 않는 건 귀찮아서가 아니라는 것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가격 앞에서 멈칫하고 저렴한 과일 또는 과일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토마토만 먹기 때문이었다.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 선택의 폭이 좁아서 매번 같은 과일을 먹었다. 그러다 먹지 못하고 중간에 먹는 것을 포기하는 거였다.
과일 앞에선 바구니에 담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술 앞에서는 거침없이 지갑이 열렸다. 몸에서 알코올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다시 채워 넣기 바빴다. 왜 몸에 좋은 과일을 양껏 먹는 걸 포기하고 술을 선택할까?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노란 봉투를 버리면서 다 먹지도 못하면서 왜 또 샀을까 하는 후회를 했고 마음 한구석이 물러져서 으깨지고 뭉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러터진 슬픔 한 덩어리와 삐뚤어진 마음을 털어내 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대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