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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14. 2022

하얀 천 뒤에 숨어있던 민낯을 드러내다

얇은 천 한 겹에 의지한 채 버틴 지 일 년이 넘었다. 정확한 날짜는 566일. 집 밖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새하얀 마스크가 덮인 날짜이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일은 일상이 되었고 우리는 모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난 외출할 때 깜빡하고 현관을 나선 적도 있었고 답답함이 코끝까지 차올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조용히 숨을 크게 내쉬기도 했다. 분명히 숨을 쉬고 있었지만, 고구마 백 개, 완숙 달걀 한 판, 찐 감자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늘 따라다녔다. 우리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조심해야 했고 타인에게 적당한 거리 두는 법을 배워갔다. 마스크 뒤에 숨어서 겨우 눈만 끔뻑거리며 그렇게 자신을 지켜나갔다.    

 

마스크는 시간이 흘러 일상이 되었다. 흰색을 벗어나서 다양한 색들이 앞다투어 출시되었다. 스킨, 베이지, 핑크 등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이다. 이제는 마스크가 아닌 민낯이 더 어색할 지경이다. 마스크를 써서 불편한 점도 많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편이지만 겨울이면 몸이 살짝 알아차릴 정도의 미열을 한두 번씩 겪었다. 그러나 566일 동안 그런 미열은 발생하지 않았다.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손 씻기를 실천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 화장하지 않으니 외출시간이 빨라졌고 화장품에 들이는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저축을 한 것도 아니니 그 돈을 아껴서 술 마시는 비용으로 지출했는지도 모르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566일 만에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조심스러워했다. 대부분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오히려 벗은 사람들이 더 어색해 보였다. 난 마스크를 쓴 무리 사이에서 용기를 내어 민낯을 드러냈다. 생리 전이라 잔뜩 부은 얼굴, 가볍게 바른 선크림, 살짝 바른 립스틱. 마치 아무것도 입지 않고 헐벗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너무 많이 참았다. 이제는 숨 한 번 크게 쉬어도 되지 않을까?

콧구멍으로 밤공기의 차가움과 은은한 꽃향기, 푸르른  내음이 들어왔다.   가득 공기를 집어넣고 음미한  천천히 내뱉었다. 내가 내뱉은 한숨이 공기 중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맞아  느낌이야!!!’


그동안 내가 내뱉은 수많은 한숨은 마스크 속으로 뜨겁게 돌아다니며 내 볼을 붉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얼굴을 타고 마음마저 일렁이게 만들었다.        

   

내가 써왔던 마스크 개수만큼 사람들과 멀어졌고 홀로 애쓰며 살아왔다. 이젠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가 다시금 에너지 넘치고 눈부시게 빛나는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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