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어른일기 Jun 15. 2022

꿀단지를 품은 집이 아닌 방

흔히들 말한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고. 나도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 집에 가고 싶다. 퇴근하고 있는 길이지만 정말 격하게 집을 원하고 있다. 신이 나에게 초능력 하나를 준다고 한다면, 늘 바라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닌 순간 이동을 달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더는 타지 못할 정도로 꽉 찬 지하철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온다.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모두가 집으로 빠르게 가고 싶어 탔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난 예의 바른 차렷 자세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서 괜히 노선도 한 번, 앞사람 어깨 한 번, 옆 사람 가방 한 번, 눈동자는 혼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파도타기 하듯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렸다. 빽빽하게 서 있는 덕분에 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하철은 멈추고 달리기를 반복하다가 회사에서 집까지 중간 지점인 정류장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정류장에서 한 번의 썰물이 일어났다. 차렷 자세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눈은 바삐 움직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빠져나간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여기에 집이 있다면 저 썰물에 휩쓸려 나갈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내 집은 왜 여기가 아닌 거기에 있을까? 이유를 잘 알고 있지만 생각하면 우울해지니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짤들을  때면 공감하고  공감하며 하트를 아낌없이 눌러댔다. 남의  벌기가  쉽지 않으며,  빠는 직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데 연애는  하고 싶어지는  보면 이게  봄이라서 그런  같다.


가슴  쪽에는 사직서를 품고 지갑에는 로또를 품었다. 인생은 한방이라며 기대해 보지만 역시는 역시다.  아까운  원이 매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도 모래알만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이마저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낙을 생각하니 유일한 낙이 있다는  깨달았다. 오늘 밤은 그냥 자려고 했는데 살짝 올라온 온도로 인해 상큼하고 청량한 에일 맥주가 간절해졌다.  술이다. 맨정신으로 살기 어려워 취하나 보다.     


집으로 가까워지면서 집이라기보단 방에 가까운 나의 원룸을 떠올렸다. 미세먼지가 없어서 열어놓고  창문 사이로 송홧가루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퇴근  집으로 가도 반기는  하나 없이 고요한 방인데 그래도 집으로 가는 시간만 기다리게 된다. 꿀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집으로 퇴근했지만 진정한 퇴근은 아직이다. 혼자 작은 방을 꾸리고 살아도 나름 바쁘다. 청소기를 돌리는 ,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를 정리하는 , 내일 먹을 밥을 짓는 , 분리수거 하는 ,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언제일까? 대략 8시부터 10 사이다.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 또는 SNS 보거나 책을 읽었다. 잠은 10시에서 12 사이에 자는 편이다.


평일 동안 내가 주구장창 기다리는 시간은 고작 두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두 시간이 나에겐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내일을 살아가야 할 꿀 같은 시간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하얀 천 뒤에 숨어있던 민낯을 드러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