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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16. 2022

엔딩 크레딧

고소한 팝콘, 달콤한 캐러멜 팝콘, 짭짤한 나초. 목구멍을 짜릿하게 치는 탄산의 맛 콜라까지. 이것들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바로 극장이다. 이른 퇴근에 신이 난 건지, 극장에 가서 신이 난 건지, 아니면 내일이 황금 같은 휴일이라서 그런 건지. 가는 내내 발걸음은 빠르고 경쾌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가자 코가 자동으로 벌름벌름한다.


익숙하지만 극장에 와야 맡을 수 있는 바로 그 냄새다. 냄새만으로 맛이 그려지니 역시 다 아는 맛이 무섭다. 냄새의 유혹에서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미리 예매한 표를 출력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먹을까? 말까? 아니! 영화를 보면서 팝콘에 콜라 먹는 것을 고민해? 하며 놀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영혼의 단짝인 팝콘과 콜라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냥 영화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물론 집에서 편하게 볼 때는 주전부리를 항상 옆에 끼고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꾸준한 속도로 배를 채운다.   

  

극장에 암막이 되면 영화가 시작된다. 화려한 액션과 입이 떡 벌어지는 CG, 멋진 배우들의 연기. 100분이 넘도록 휘몰아치다가 자막이 올라가면 잔뜩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리면서 극장을 빠져나온다. 나오는 사람들은 방금 본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거나 말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난 영화를 혼자 즐기는 편이라 말이 없는 편에 속한다.


흥행이 보장된 영화는 관객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 외에 영화나 독립영화의 경우는 관객이 많지 않다. 그래도 그 큰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 인생 최초로 극장 하나를 통째로 빌린 것처럼 나 홀로 영화를 오롯이 본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내가 썼던 메모장을 잠시 소환해 오겠다      


[오늘 누렸던 복 한 스푼]  

   

빨간색 의자 쉰두 개와 소박한 스크린이 전부였다. 아무도 없는 빈 상영관에 들어와서 미리 예매한 좌석에 앉았다. 스크린에선 그곳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직원이 들어왔다. 작은 창문을 닫고서 검은색 암막 커튼을 쳤다. 그는 휴대전화 불빛으로 여기저기 확인했다. 그리고 출입구에 커튼을 친 후 밖으로 나갔다. 난 그날 영화관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영화 한 편의 값을 지불하고 꽤 흥미로운 결과임이 틀림없었다.     

이 영화는 예고편 이분 사십일 초를 채 보기도 전에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를 보면서 소리 내 웃기도 하고 살짝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툭 하고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건드렸다. 구십육 분이라는 시간 동안 오롯이 영화를 즐겼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이 영화는 내 인생 영화가 돼버렸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중에서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대신 애써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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