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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17. 2022

걷기의 기쁨과 슬픔

평일 내내 못나 보이던 거울 속 내 모습이 주말이 되니 조금 예뻐 보였다. 몇 안 되는 날 중 하루에 불과한 귀한 날이다. 뭐가 다르냐고 무어라 하겠지만, 나만 아는 미세한 예쁨이 드러나는 날이니 아무 말 하지 않길 바란다. 외출하지 않는 주말에도 밥을 열심히 챙겨 먹고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시며 설거지는 바로 해치우고 마무리로 샤워까지 꼼꼼히 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오늘도 그런 루틴이 이어졌다.      


평일에는 고데기와 한참을 실랑이해도 출근하면 붕 뜨던 머리가 오늘따라 손길 따라 쭉 뻗어나가 차분해졌다. 마스크 속에서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해 푸석했던 피부가 로션만 발랐을 뿐인데 윤기가 돌았다. 심지어 부기마저 빠져 보였다. 이건 생리가 중간에 다다라서 생긴 효과일 수 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흐림으로 변경되었다. 주말에 집에 있을 생각이었는데…     


그 순간 마음이 말했다.      


‘나 좀 산책시켜줘.’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적당히 불었다. 친구가 없어서 주말에는 늘 약속이 없다. 그래서 집에 있거나 혼자서 돌아다니곤 한다. 가족 또는 친구와 봄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 혼자다. 조금 외롭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무섭고 싫어서 내가 멀리한 결과이니 말이다. 성곽을 거닐며 이어폰을 꽂았다. 봄 분위기가 물씬 나는 노래를 플레이시켰다. 노이스 캔슬링 기능은 이럴 때 참 좋다.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음악과 나만이 존재하니까.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달큼한 아카시아 향이 콧구멍으로 세게 들어왔다. 걷다 보니 우울했던 마음이 금세 나아졌다.      


걷기에 적당한 온도, 습도, 환경이었다.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파란 하늘과 푸르른 나무는 봄을 만나게 해주었다.

걷길 잘했다.

내 인생도 멈춰 있었던 적은 없었다.

늘 어디론가 걸었고 나아가고 있었다.

제자리걸음처럼 보여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난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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