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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18. 2022

이따금 떠나는 여행

이따금 기차를 탑니다.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홀로 짧은 여행을 합니다. 기차에 몸을 싣고서 멍하니 창밖을 쳐다봅니다. 덜컹거리면서 기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기차는 어김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발합니다. 느리게 살고 있어서일까? 눈앞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풍경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속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보통의 속도보다 느리게 가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는 거지?, 마음은 대답하지 못한 채 철도를 따라 서울로 향해 달려가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같은 공간 안에는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과 짧았던 만남을 뒤로한  다음을 기약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갔던 묵호에서의 추억이 아련합니다. 게스트하우스의 다정했던  사장님. 떠날  아쉬워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던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얼마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가장 먼저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곳은 무사한  같았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선천적 길치입니다. 길 위를 여행할 때면 저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긴장을 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아주 여유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낯선 곳을 찾아가야 할 때면 긴장은 평소보다 몇 배로 늘어납니다. 두 눈은 지도 앱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걸 의지한 채 그것이 나의 길을 안내해 줄 거라 믿습니다. 아주 맹신합니다.


앱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안내해 주지만 그 길을 찾아야 하는 건 오로지 내 몫입니다. 지도에는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산속에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은 오솔길인지 까지는 알려주질 않습니다. 가봐야 그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고 그냥 나아가고 싶으면 걸어가면 됩니다. 어차피 여행하는 길이니까요. 목적지를 바꾼다고 잠시 쉬어간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길 위에는 나만 존재하니까요.     

 

길치답게 목적지를 앞에 두고 헤매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도착하는 동안 오로지 길을 찾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므로 주변을 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걷기도 합니다. 그럴 때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니까요.      


선천적 길치여서일까요? 전 인생에서도 길치인가 봅니다. 계속해서 길을 헤매고 길을 찾고 또 먼 길을 돌아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변을 서성이다가 좌절하며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걸어갑니다. 걷다 보면 그 길이 내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며 오늘도 길 위를, 인생을 여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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